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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기자명 최형심 시인

[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 이건청의 ‘먼 집’ 해설

  • 입력 2022.11.24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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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집 / 이건청

 

굴피집에 가고 싶네.

굴피 껍질 덮고

낮은 집에 살고 싶네.

저녁 굴뚝 되고 싶네

저문 연기 되어 퍼지고 싶네

허릴 굽혀 방문 열고

담벼락 한켠

아주까리 등잔불 가물거리는

아랫목에 눕고 싶네

육전소설 읽고 싶네

뒷산 두견이

삼경을 흠씬 적시다 가고난 후

문풍지 혼자 우는

굴피집에 눕고 싶네

나 굴피집에 가고 싶네.

* 육전소설 : 1913년부터 신문관에서 간행한 값싼 문고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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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심 시인

저녁밥 짓는 연기가 굴피집 지붕을 타고 오릅니다. 허리를 굽혀 방문을 열고 들어가면, 지붕 낮은 방에 아주까리 등잔불이 타고 있습니다. 습기를 머금은 갱지 냄새를 맡으며 문고판 책을 펼치면 머나먼 나라, 가보지 못한 세상이 내 곁으로 다가옵니다. 신화 속의 주인공과 마주보기도 하고, 저편의 베르테르 눈가를 닦아주기도 하다 보면 어느새 깊은 밤. 누렇게 바랜 종이 위를 짚어가던 손가락이 두견이 울음소리에 멈춥니다. 두견이 울음이 그치고도 한참 동안 문풍지 혼자 울고 있는 낡은 굴피집…… 돌아가고 싶지만 돌아갈 수 없는 어린 시절의 먼 그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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