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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기자명 최형심 시인

[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 조혜은의 ‘이면지’ 해설

  • 입력 2022.12.28 21:20
  • 수정 2022.12.28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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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면지 / 조혜은

-사실

 

내가 가고나면 사람들은 진실을 말하겠죠
웃음도 깨어지고 일은 끝나고
믿는 것과 보는 것은 다르니까요

다치고 난 뒤의 마음은 아무리 달래도 가라앉지 않겠지만

보고 싶다
몸의 부위를 제외하고 발음되는 그리움은 너무 간절해서
무료함도 얼굴도 너의 골목도 이름도 머금고

좋은 사람들이 모두 가난한 아이를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란다
세탁소 앞에 걸린 깊은 빛깔의 반짝이 드레스 같은 것들을 본 날이면 몸이 좋지 않았어요.
천사의 노래를 훔쳐 들은 것처럼 허락되지 않은 고해성사를 마치고 싶었어요 죄를 지을 두 손을 허락하소서

나를 생각해 나의 운동화 끈을 자주 풀어지게 만드는 사람
나를 가장 친절한 사람으로 보아주는 사람 나를 수줍은 사람으로 기억하는 사람에게 나는 친절하고 수줍은 사람이었어요 나는 지겨운 사람이었어요

종이 뒤에 숨겨진 아이들
바스라지고 작고 마르고 뜨고 짠 아이들

막힌 코를 들이마시며 훌쩍이고 나면
매일의 부스러기를 닦고 나면
나는 지독함에서 점점 더 멀어졌어요

죄를 반죽해 부풀린 빵 조각이 욕실 바닥에 떨어지면 가난한 아이의 잘린 손가락 같았어요
다치고 난 뒤에 나는 그 골목에는 없는 노래입니다

혼자 마음을 키웠어요 돌연변이처럼 사랑하지 않는 짝사랑하는 사람들이 넘쳐나면 나는 더 잘 넘어질 수 있었어요

 

_________________

최형심 시인
최형심 시인

남의 삶은 겉으로만 보면 참 화려해 보입니다. 특히 대중에게 자주 노출되어야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경우는 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예술가에게 쏟아지는 화려한 조명 뒤에는 늘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시인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아름다운 시가 적힌 이면지에는 시인이 쓴 고통과 눈물의 낙서들이 가득한 법입니다. 시인이란 종이 뒤에 숨겨진” “바스라지고 작고 마르고고통받는 자아를 들키지 않기 위해 밤새 훌쩍이고나서도, 나를 짝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더없이 아름답고 우아한 결과물들을 보여주어야만 하는 존재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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