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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기자명 최형심 시인

[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 정숙자의 ‘동역학’ 해설

  • 입력 2023.01.11 16:24
  • 댓글 0

동역학 / 정숙자

 

하나둘 우물이 사라졌다

 

마을과 마을에서

깊이가 밀려난 것이다

 

우물물 고이던 시간 속에선

두레박이 내려간 만큼

물 긷는 이의 이마에도 등불이 자라곤 했다

 

꾸준히 달이 깎이고

태양과 구름과 별들이 광속을 풀어

맑고 따뜻한 그 물맛이 하늘의 뜻임을 알게도 했다

 

하지만, 속도전에 뛰어든 마을과 마을에서 우물은 오래가지 못했다

 

노고를 담보하지 않아도 좋은 상수도가 깔리자

물 따위는 쉽게쉽게채우고 버릴 수 있는

값싼 거래로 변질/전환되었다

 

엔트로피의 상자가 활짝 열린 것이다

 

가뭄에도 사랑을 지켰던 우물 속의 새

언제 스쳐도 깨끗하기만 했던 우물물 소리

그런 신뢰와 높이를 지닌,

 

옛사람, 무명 옷깃 어디서 다시 만날까

그리고는 우물가에 집 짓고 살까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깊이라는 단어가 언젠가부터 시대에 뒤떨어진 단어가 되었습니다. 첨단 기계문명의 시대이자 고도의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는 무언가에 천착하고 시간과 공을 들여 한 우물을 깊게 팔 여유를 잃었습니다. “쉽게” “채우고” “쉽게” “버릴 수 있는” “값싼 거래로가득 찬 세상입니다. 그 결과 우리는 맑고 따뜻한, “우물물 소리”, “을 잃었습니다. 모든 이에게 깊이를 강요하는 것은 폭력입니다. 마찬가지로, 깊이에 천착하고자 하는 이들을 그렇게 할 수 없도록 만드는 세상도 폭력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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