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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기자명 최형심 시인

[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 김조민의 ‘감, 잡다’ 해설

  • 입력 2023.01.18 11:54
  • 수정 2023.01.18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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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잡다 / 김조민

 

   도시에서 유학하던 아버지는 배가 고프면 설익은 감을 따 아랫목에 넣어두고 배가 고플 때마다 손을 넣어 가만가만 감을 만져보셨다는데, 단단한 감이 물러지기 시작할 즈음 밤이 깊어가고, 만지면 보일 듯 말 듯 파문처럼 감의 껍질 위로 동그라미가 뜨는데 침이 고이고, 이불 속에서 설익은 감을 조심조심 눌러보며 나중에는 엄마의 젖가슴도 그렇게, 또 나중에는 갓 태어난 내 정수리도 그렇게 조심조심 눌러보셨다는데, 아직도 감나무를 보면 설익은 감을 따 가만가만 만져보시는 아버지, 초록빛이 도는 감 위로 아버지가 비치고 아버지는 약관의 청년이 되고 초록 감이 붉게 익는 것만이 세상 가장 큰 소원이던 그때가 청년의 눈 위에 되비치는데, 그런 아버지를 볼 때면 나는 내 바로 전의 생을 조심조심 더듬어 기억해 내곤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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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심 시인
최형심 시인

감을 잡다라는 단어는 두 가지 의미로 읽힙니다. 물리적으로 감을 손에 쥔다는 의미와 느낌으로 알아차리거나 실마리를 찾아낸다는 의미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이 시는 그 두 가지 의미를 멋지게 변주해낸 작품입니다. 시인의 아버지는 학창시절 배가 고플 때면 설익은 감을 따서 아랫목에 넣어두고감이 물러지기를 기다리셨습니다. 덜 익은 감은 떫은맛 때문에 먹을 수 없기에 아무리 입에 침이 고여도 물러질 때까지 참고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덕분에 일찌감치 인생에 대한 감을 잡으신 것 같습니다. 인생은 참고 기다려야 하는 인내의 연속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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