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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기자명 최형심 시인

[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 고경숙의 ‘지중해식 달 샐러드’ 해설

  • 입력 2023.03.02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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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식 달 샐러드 / 고경숙
 

  하얗게 우려낸 달 샐러드, 손으로 몇 조각 뜯어 싱싱한 야채 위에 치즈처럼 얹고 무심한 듯 앤초비와 올리브유 몇 방울을 버무리면 그만인, 굳이 따지자면 지중해식 샐러드 

  금어기임에 몰래 던지는 그물코가 그렇게 컸을 때 물은 눈치챘어야 했다
  동그랗고 하얀 달들만 건지고 덜 자란 달을 다시 던져 물잠 재우는 일을 허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달의 치어들이 다음 날 쪽달로 뜨지 않았겠지 미처 못 떠난 영혼, 아득한 세상에 팔을 걸치고 두고 가는 이름을 부르며 물 위를 걷는 나무들, 달을 보고 우는 늑대의 시간도 서럽진 않았으리 


  푸딩보다 더 부드러운 달을 먹는다 이 달을 먹고, 달덩이 같은 여자는 아이를 배고 그 아이는 자라 달 샐러드에서 토끼고기 맛이 난다고 침대 밑으로 도망갔단다 

  주인은 음식 맛이 어떠냐고 찡긋 웃더니 다시 그물을 들고 나갔다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나의 시간은 방조다 

 
  아이를 낳을 일도 없고 토끼고기 맛도 못 느끼는 나는 낯선 식당 야외 식탁에 앉아 몇 시간째 달 샐러드를 먹고 있다 눈 감고 오물오물 천천히, 가물가물 오수에 빠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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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심 시인
최형심 시인

달 샐러드라니! 시적 상상력의 세계는 넓고도 깊습니다. 시인은 커다란 유리창이 있는 카페에 앉아 샐러드를 먹고 있었나 봅니다. 그러다가 하늘에 뜬 창백한 낮달과 눈이 마주쳤겠지요. 샐러드를 한 입 오물거리며 바라본 하얀 낮달이 치즈처럼 보였습니다. 저걸 “손으로 몇 조각 뜯어 싱싱한 야채 위에 치즈처럼 얹고 무심한 듯 앤초비와 올리브유 몇 방울을 버무리면 그만”이겠다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상상은 달이 밥상이 올라오기까지의 과정으로 확장됩니다. 달을 건지기 위해 누군가 만월의 밤바다에 그물을 드리웠을 것입니다. “동그랗고 하얀 달들만 건지고 덜 자란 달을 다시 던져” 버리겠지요. “그물”을 챙겨 잘 자란 달을 건지러 가는 달 샐러드 가게 주인이 어딘가에 살고 있을 것만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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