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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기자명 최형심 시인

[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 김종해의 ‘내란’ 해설

  • 입력 2023.03.08 11:51
  • 수정 2023.03.08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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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 / 김종해 

낙엽이내린다. 우산을들고
제왕은운다헤맨다. 검은비각에어리이는
제왕의깊은밤에낙엽은내리고
어리석은민중들의햇불은밤새도록바깥에서
궐문을두드린다.
깊은돌층계를타고내려가듯
한밤중에촉대에불을켜들고
궐안에내린낙엽을투석을
맨발로밟고내려가라내려가라
내려가라깊고먼지경에 침잠하여
제왕은행방불명이된다. 제왕은
화구의불구멍이라자기혼자뿐인거울속에서
여러개의탁자위에내린
낙엽이되고투석이되고
독재자인나는맨발로난간에앉아
벽기둥에꽂힌살이되고
깊은밤이된다. 제왕은군중속에떠있는
외로운섬인가, 낡은법정의흔들리는벽돌을헐어
이한밤짐에게비문을써다오
화염인채무너지는대리석처럼깊은밤인경은
시녀같이누각에서운다누각에서떠난다
아, 한장의풀잎인가미궁속에서
내전에세워둔내동상은흔들리고
나는거기가서꽃힌비수가되고
한밤동안석단을내리는물든가랑잎에
붉은용상은젖어
우산을들고제왕은운다헤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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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심 시인
최형심 시인

절대 권력의 왕조가 무너지고, 왕좌에서 쫓겨나는 권력자의 최후를 그린 이 작품은 1960년대 중반 신춘문예 당선작입니다. 당시의 시대상을 생각하면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뽑은 심사위원들의 용기가 놀라울 따름입니다. 이 시에는 쫓겨나는 독재자의 한 인간으로서의 내적 갈등과 분열, 탄식 같은 것들이 섬세하게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동시에 “제왕”, “민중”, “횃불”, “투석”, “독재자”, “화염”, “비수” 등의 단어들에서 볼 수 있듯이 군사정권에 대항하던 그 시대의 모습 또한 잘 드러나 있습니다. 사극의 한 장면 속으로 들어가 비에 젖어 탄식하는 독재자를 눈앞에서 만나고 온 듯한 매력적인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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