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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기자명 최형심 시인

[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 김백겸의 ‘카르마의 블랙박스’ 해설

  • 입력 2023.03.17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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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마의 블랙박스 / 김백겸

 

  이집트의 토트모스 4세는 왕자시절 스핑크스의 발밑에서 잠들었다가 파라오가 되리라는 예언을 받았다지

  마호메트는 꿈속에서 천사장 가브리엘과 함께 은빛 말을 타고 천상의 일곱 세계를 지나 알라를 만난 후 예언자가 되었다지

  시간을 꿰맨 실밥이 터져 주름에 접힌 위대한 꿈의 풍경들이 잠깐 흘러나와 카르마(karma)에 갇힌 블랙박스-늙은 학인의 심장을 아프게 하네

  늙은 학인이 높은 탑의 계단을 기진맥진으로 올라가서 드러누운 꿈을 꾼 그 날 오전, 서울신문에서 전화가 와서 신춘문예 당선소감을 썼던 기억

  늙은 학인이 가마를 타고 영전하는 상관의 뒤를 작은 가마를 타고 가다가 가마가 부서져 걸어가는 꿈을 꾼 후, 상관은 실장으로 승진했으나 과장후보심사에서 일 년을 더 기다려야 했던 기억

  아버지의 태몽은 집안마당의 감나무에 비행기가 추락해서 빛나는 금속막대기 두 개를 갈무리해서 내려오는 꿈이었다지

  어머니의 백일기도로 낳은 아들은 당신의 기쁨과 사랑이었고 동네무당의 큰 예언으로 어머니의 환상은 강처럼 깊어갔다지

  늙은 학인이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 직장의 승진과 계좌의 잔고가 목표가 되자 태양에 갇힌 내 눈의 어둠은 더욱 깊어갔고 몸 너머의 세상이 보이지 않았던 기억

  늙은 학인이 오디오와 음반에 미치고 인간 세상의 악기와 노래가 심장의 피를 고동치게 하자 마야에 갇힌 귀의 어둠이 깊어지면서 침묵 저편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던 기억

  늙은 학인이 인간세상의 삼독(三毒)을 마시고 보물을 찾아야하는 사명을 까마득하게 잊어버렸던 기억

 

  꿈속에서 찾아간 대전시 대흥동 옛집은 아폴론 신전처럼 방황하는 늙은 아이의 과거와 미래의 운명을 품고 있는 괴물이었다는 몽상

  신탁을 품은 수수께끼의 힘들이 상징 언어의 껍질을 뚫고 나와 옛 집을 히에로파니(hierophany)의 신전으로 변신시켰다는 몽상

  꿈속으로 일진광풍의 바람이 불면서 옛집의 기둥이 단청으로 화려해지고 기와는 까마귀로 변신해 하늘로 날아갔다는 몽상

  대흥동 옛집은 별들의 프로그램을 상징 메시지로 계시하면서 몽상 학인의 희극과 비극 인생을 전개했다는 몽상

  샤먼의 세계에 갇혀 있는 옛 집이 몽상 확인을 시인으로 만들어 자신을 추억하게 했다는 몽상

  몽상 학인은 무의식의 어둠속에서 델포이 아폴론 신전처럼 스스로 빛나면서 괴물이 된 집을 지키는 사제였다는 몽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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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심 시인
최형심 시인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에 따르면 세계 각지의 신화 속에는 출생-부름-모험-역경-귀환으로 요약할 수 있는 공통요소가 있다고 합니다. 여기, 한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그는 시인이 될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으나, 세상의 압력에 굴복하여 안정된 직장을 얻고 결혼을 했습니다. “직장의 승진과 계좌의 잔고가 목표가 되자 태양에 갇힌 내 눈의 어둠은 더욱 깊어갔고 몸 너머의 세상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하지만 내면의 열망은 그를 각성시켰습니다. “위대한 꿈의 풍경들이” “카르마(karma)에 갇힌그의 심장을 아프게했다고 합니다. 그는 기꺼이 운명을 받아들이고 시인이 되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노년이 된 시인은 이제 다시 고향의 마당으로 돌아가 삶을 돌아봅니다. “꿈속으로 일진광풍의 바람이 불면서 옛집의 기둥이 단청으로 화려해지고 기와는 까마귀로 변신해 하늘로 날아가버리는 환영을 봅니다. 내면의 목소리를 따라 간 시인은 결국 자신만의 신화를 살아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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