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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기자명 최형심 시인

[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 이윤설의 ‘재에서 재로’ 해설

  • 입력 2023.04.06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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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에서 재로 / 이윤설

 

꿈에 당신이 찾아온 어제는
둘이 서먹하니 마루에 앉아 있습니다


빈 쟁반의 보름달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습니다


당신이 내 옆에 가까이 있어 본 지도
하도 오래되었는데, 내가 부른 것도 아닌데


나는 용서받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늘엔 미워 불러볼 이름 하나 없이 맑고
잡초 자란 마당가에
우리 둘이 소복하니 무덤처럼 앉아
말없이 백 년 동안 한 얘길 하고 또 하며


당신이 용서받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지러지는 달의 얼굴이
소금처럼 소슬하고 짠 빛으로 와서
우리의 식은 재를 만져 보는 것이었습니다


이렇듯 가벼이 고운 가루인 줄 몰랐을 때도 있었습니다


조용히 산이 마루로 다가와 당신을 보자기에 싸듯 덮어 달쪽으로 데려가도록


나는 꿈에도 오지 않을 것을 알았습니다
용서가 그런 줄 알게 되었습니다


 

______________________

최형심 시인
최형심 시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게 죽음이라지만, 먼저 떠난 또래 시인의 이름을 만날 때 유독 더 마음이 아픈 것은 이승에서 얽혔던 인연 때문일 것입니다. 이윤설 시인과 개인적으로 가깝게 지낸 것은 아니기에 그에게 용서받을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모든 것을 용서하고 떠나려는 그의 마음이 엿보이는 이 작품을 읽으며 많이 슬펐습니다. 우리는 비슷한 시기에 데뷔했고 십 년 조금 넘게 함께 활동했지만, 딱 한 번 모임에서 제가 그의 안부를 물었던 것이 인연의 전부였습니다. 시보다는 연극 쪽에 더 몰두하고 있다는 대답을 들었고 늦은 나이에 좋은 짝을 만났다는 소식도 덤으로 들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자기 이름으로 나온 시집 한 권 만져보지도 못하고 갔다고 안타까워했는데, 다행히 작년에 유고시집이 나왔습니다. 그가 제 꿈에 찾아올 일은 없겠지만, 불가리아라는 나라를 떠올릴 때 그의 시 불가리아 여인을 제일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있다는 걸 말해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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