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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사회·세계
  • 기자명 백춘성 기자

저가구매에 꽂힌 운영기관, 한국의 토종 고속열차 어디로 가나?

  • 입력 2023.04.17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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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고속철 차량제조 기술 사장시켜서는 안돼"

현대로템 동력분산식 고속차량 EMU-320.(사진=현대로템 제공)
현대로템 동력분산식 고속차량 EMU-320.(사진=현대로템 제공)

[내외일보] 백춘성 기자 = 지난해부터 국내의 고속열차 입찰을 둘러싸고 많은 일이 일어났었다. 코레일이 평택선 등 신설노선에 도입할 목적으로 EMU-320 고속열차 17편성 136량 구매를 위해 사전규격공개를 하면서부터다.

코레일은 정부 출연기금을 통해 약1,000억원이상의 개발비로 5년이상의 시간을 통해 토종기술로 개발한 분산식 고속열차를 가격 문제로 기피하면서 감사원의 사전 컨설팅까지 받는 우여곡절 끝에 국제경쟁입찰 도입을 통해 해외업체와의 컨소시움을 허용하는 입찰방식을 택했다. 

입찰 결과 코레일의 기대와는 달리 고속열차 공급경험이 있는 회사로 생각했던 스페인의 탈고와 우진산전의 컨소시움구성은 이뤄지지 않고 단독으로 입찰에 참여한 우진산전은 적격심사도 통과하지 못한 상태로 탈락하고 현대로템이 단독으로 낙찰받았다. 

한편, 똑같은 상황은 현재 SR로 옮겨와서 4월11일 입찰을 마감한 EMU-320 112량의 입찰결과는 역시 현대로템의 단독 응찰이었다. 그런데 SR이 “1개사 입찰시 재공고 입찰을 실시하지 않고 수의계약이 가능하다”고 명시한 자신들의 입찰 공고내용을 무시하고 재입찰 계획을 공고하였다. 

어떤 기술이든 기술개발을 위해 초기에 많은 시간과 비용이 투입되는 것은 당연하다. 

고속열차 기술을 가진 회사는 자신이 투입한 시간과 비용을 차량가격에 포함할 것이고 기술 제공을 위해 충분한 대가를 요구하는 것은 당연함에도 우리 정부와 코레일 등의 공공운영기관은 이런 경제의 원리를 무시하고 오직 저가 구매만을 위해 국내에서 개발된 기술까지도 외면하고 있다. 

철도차량의 경우에는 고속열차의 고급기술을 보유하고 있어도, 나라마다 각각 다른 운행조건과 인프라의 내용에 따라 별도로 개발하여야 하는 부분이 많으므로, 저가 입찰은 품질 불량이나 수명 저하 등으로 공급 이후에 수많은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이런 이유에서 스페인 철도 업체 탈고가 컨소시움을 포기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탈고 입장에서는 컨소시움을 통해 자신들의 기술을 제공하는 데 필요한 비용과 시간을 고려할 때, 코레일의 예산에 맞출 수 없기 때문이며, 자신들의 기술을 제공하는 데 대한 적절한 보상이 없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기회를 동등하게 주는 것도 공정한 입찰이라 할 수 있으나, 대량의 인명을 안전하게 수송해야 하는 공공재로서의 철도차량, 그것도 320Km/H에 이르는 고속으로 주행하는 고속열차를 자격이 전혀 확인되지 않은 중소기업에게 단순히 특정 업체의 가격 견제를 목적으로 입찰의 기회를 준다는 설정 자체가 문제일 수 있다.

지난 코레일의 EMU-320 고속열차 136량 입찰에서는 우진산전이 기준점수인 85점을 통과하지 못했지만, 언젠가는 저가구매를 위한 또 다른 논리에 의해 제작 능력이나 기술개발 능력을 완화한 기준을 적용한다면, 차량의 제작능력이 전혀 없는 업체가 고속열차를 제작하는 상황을 만들 수도 있다. 

사업을 수주한 중소업체는 제작 경험 및 기술력 부족으로 인해 제대로 된 전동차를 생산하지 못하고 계약 건별로 생산이 지연되어 1년 이상씩 납품기한을 넘기고 있으며 언제 납품이 종결될지 아무도 모르는 상태로 국민의 세금이 낭비되고 수명이 지난 차량의 운행으로 국민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는 현실이다. 

저가 정책에 동조하고 입찰에 참여한 중소업체들은 결국 제작경험, 기술능력, 계약이행능력 등의 숱한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으며, 점차 시간이 지남에 따라 경영상에 커다란 짐이 되고 있음을 지난 3월에 이들 중 한 회사가 공시한 재무제표를 통해서도 확인되었다. 

이 업체의 최근 재무제표를 살펴보면, 부채비율이 2021년도에 355%, 2022년도에 619%로 본격적인 철도차량 시장 진입하기 전은 물론 동종의 산업계와 비교해도 최근 부채비율이 지나치게 높아지고 있어 최근에 재무건전성이 현저하게 나빠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매출 대비 매출원가의 비율이 95%에 이르고 있어 지나치게 낮은 계약금액이 원인인지 의심되는 상황이며, A/S 비용과 이자 비용의 증가 등이 손익에 영향을 미쳐 결국은 경상수지에서 8%에 이르는 적자를 기록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것이 끝이 아니고 시작이라는 데 그 심각성이 있다. 이 회사는 입찰자격이 완화된 2018년 이후로 그동안 계약 잔고가 1.5조에 이르고 그 수량은 1,000량이 넘지만, 아직 정상적인 계약이행이 요원하다는 것이다.

전동차 사업계약 조차 정상적으로 수행하지 못하는 후발 중소 철도차량 제작사에게 저가 정책의 이유로 이보다 훨씬 어려운 경험과 기술력을 요구하는 고속열차 사업을 맡기게 된다면, 그 고통의 몫은 고스란히 국민에게 전가되는 상황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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