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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좨송하다' 분식집 노부부, 주문 폭주에 '어안이 벙벙'

  • 입력 2023.07.27 12:12
  • 수정 2023.07.27 12:13
  • 댓글 0
27일 오전 서울 동작구의 분식집 벽에 세월이 느껴지는 메뉴판이 붙어있다.
27일 오전 서울 동작구의 분식집 벽에 세월이 느껴지는 메뉴판이 붙어있다.

[내외일보] 이철완 기자 = "너무너무 좨송합니다. 너무 큰실수를 햇내요. 앞으로는 조심 또 조심하갯읍니다"

"좨송하고 또 좨송합니다. 재가 못밧나 보내요, 다음엔 김치전도 얄게 해드릴게요"

서울 동작구의 한 분식집 리뷰에 연세 지긋한 사장님이 남긴 글이다. 익명의 손님이 배달 애플리케이션(앱)에 "분명 오이 빼달라 그랬는데 넣을 수 있는 곳은 다 넣어놨네요. 요청사항 좀 읽어주세요", "일반 김밥에 당근을 빼달라고 요청했으나 이건 당근 김밥을 주문한 것 같아요! 김치전은 밀가루 반죽맛이에요!" 등의 댓글이 달리자 노부부는 맞춤법은 비록 틀렸지만 진심을 담은 답글을 남겼다.

노부부의 진심 어린 사과가 온라인 커뮤니티에 알려지면서 기적이 일어났다. '돈쭐내기'에 나선 손님들 덕분에 주문이 3배가량 폭주했다.

단골 손님인 A씨는 "안 좋은 리뷰로 기사가 나와서 걱정되는 마음 반, 응원하는 마음 반으로 주문했다"며 "주문량이 많아서 그런지 평소보다 조금 늦어졌지만 여전히 양도 많고 맛있었다"고 리뷰를 달기도 했다.

노부부에겐 새로운 고민도 생겼다. 너무 바빠서 댓글을 달 시간도 부족하고 무엇보다도 체력이 달린다.

◇ "음식 못하던 나한테도 이런 날이 오다니…다들 행복했으면"

26일 오전 11시. 노량진 학원가에서 남편과 함께 분식집을 운영하고 있는 이씨는 다소 불편한 걸음으로 가게 셔터를 올렸다.

장사 시작 5분만에 손님들의 주문 알람은 쉴 새 없이 울려왔지만 이씨는 모든 주문을 다 받을 수 없어 미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이씨는 "가게가 알려지고 주문량이 3배는 늘어서 감당이 안 되고 있다. 이제는 댓글을 제대로 써줄 시간도 모자란다"며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았다.

요즘 이씨네 부부는 이런 관심이 부담스럽다면서도 감사한 마음을 어떻게 보답할지 모르겠다고 연신 고개를 숙였다.

이씨는 "지금은 어떻게 알고 배달하러 온 아저씨도 막 음료수도 사다주고 난리다. 밥먹고 10만원을 그냥 주고 간 학생도 있었어요. 고맙긴 하다만 나도 마음이 아프지, 학생들이 무슨 돈이 있나"라며 손사래를 쳤다.

이씨의 가게 리뷰에는 다른 가게 보다 유독 양이 많다는 글이 많았다. 손님 B씨는 "다음부터는 조금 적게 달라고 요청사항에 써야겠다"며 "맛있게 배 터지게 먹었고 덕분에 기분 좋은 저녁을 보냈다"고 글을 남겼다. 또 다른 손님 C씨는 "진짜 양이 다른 곳의 두세배"라며 "맛도 좋고 양도 많아서 행복했다"는 평을 남겼다.

양이 많은 이유에 대해 이씨는 그저 다들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음식을 많이 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댓글 다는 분들은) 다 나를 도와주시는 분들이라고 생각한다"며 "나처럼 음식도 잘 못하는 사람한테 살다보니 이런 날도 온다, 찾아주는 것 자체가 감사하다"고 웃었다.

(배민 리뷰 갈무리)
(배민 리뷰 갈무리)

◇ 장사만 28년째, 3배 늘어난 주문에 체력 한계 느끼기도

밀려드는 주문은 이씨 부부에게 새로운 고민거리를 안겨줬다. 이씨는 "방송도 오고 인터뷰를 하자고 하는데 별로 알려지고 싶지 않다"며 "너무 알려지면 주문도 다 감당도 안되고 몸도 힘들어서 잘 해줄 수가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전날에도 이씨는 새벽 5시에 마감을 하고 잠도 4시간 정도밖에 자지 못한 채 출근길에 나섰다. 원래 이씨의 가게 운영시간은 오전 11시에서 새벽 2시까지다. 사연이 알려지고 주문량이 늘면서 이씨 부부는 체력에 한계를 느낀다고 했다.

이씨는 "사실 내 다리가 점점 굳어가고 있다. 옛날 같으면 주문도 들어오자마자 착착 받을 텐데 지금은 못 받는다. 남편도 신장이 안 좋아서 검사를 받고 와야 하고, 갈 시간이 없어서 점심에 병원에 잠시 다녀온다"고 말했다.

이들 부부가 욕심을 덜고 오늘날 주목을 받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 30년 전 없는 형편에도 지인한테 큰돈을 빌려줬지만 돌아온 건 돈이 아닌 과일가게였다. 그후 호프집도 같이 했었지만 빚만 늘어가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사기까지 당했다.

노부부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팬데믹이었다. 이씨는 "그나마 배달 앱을 사용하면서 살아났다"며 "수수료 떼어가는 게 많아서 주위에서 하지 말라고 했는데 주문이 느는 걸 눈으로 보는 재미로 지금까지 해왔다"고 말했다.

고시준비를 하면서 틈틈이 배달 일을 도왔다는 한 학생은 "리뷰(논평)에 좋아요가 많이 달리고 있다"며 일부러 가게를 찾아와 이씨에게 소식을 전하고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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