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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기자명 고재홍 기자

황금박쥐상과 가마솥

  • 입력 2023.08.17 08:15
  • 수정 2023.08.18 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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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함평, 황금박쥐상>

 

<충북 괴산, 군민 가마솥>

 

<충남 논산, 개태사 철확(쇠가마)>

 

1960년대 후반이다. 흑백TV 보급 전이다. 대신 ‘만화’가 지적 욕구와 호기심을 충족시키던 때다. 당시 국민(초등)학교 다니던 필자 고향 마을에 송호정이란 정자가 있다. 어느 날 정자 돌계단에서 하늘을 날기 위해 점프했다. 당시 인기를 끌던 ‘황금박쥐’ 만화 영향이다. 망토를 걸친 채, 하늘을 날며 ‘정의 사도‘로 악당을 물리치는 황금박쥐처럼 금방 날 것 같았다. 누차 시도하다 콧잔등이 깨져 흉터로 남았다. 그만큼 만화 황금박쥐는 유명했다.

‘가마솥’도 모르면 농촌 출신이 아니다. 먹을 것이 많지 않던 시절, 대가족이 먹기 위해 가마솥에 쌀과 보리에 고구마를 얹어 불을 땐다. 가마솥 깜밥(누룽지)은 최고 간식이다. 논밭을 갈거나 구르마(수레)를 끄는데 소가 활용됐다. 소먹이 여물을 끓일 때는 더 큰 가마솥이 사용됐다. 달걀을 여물에 넣고 삶거나 고구마 굽기는 여물을 끓이며 맛보던 별미다.

충남 논산시 연산면 천호산 ‘개태사 철확鐵鑊(쇠가마솥)’은 훨씬 크다. 개태사는 936년 고려 왕건이 이미 투항한 후백제 견(진)훤과 함께 견훤 아들인 신검·용검·양검 형제를 물리치고 세운 호국사찰이다. 후삼국 통일대업을 이룬 곳을 기념했다. “하늘이 보호한다.“는 천호산에 세워진 절로 훗날 복원한 현재 개태사와 터만 남은 원래 개태사지는 수백m 떨어졌다.

개태사는 왕건 어진(임금 초상화)이 모셔진 ‘어진전’과 ‘철확’으로 유명하다. 지름 3m, 높이 1m에 육박하고, 둘레 9m10cm에 달하며, 두께만 3cm다. 조선시대 폐찰 돼 방치됐다. 가뭄에 솥을 옮기면 비가 내린다는 속설로 여러 곳을 옮겨 다녔다. 염라대왕이 “관촉사 은진미륵과 개태사 가마솥을 보았느냐?”고 물어 ”보지 못했다“고 답하면, ”이승에서 그것도 못 보았느냐“며 버럭 화를 냈다는 구전이 있다. 강경미내다리(미나교)와 함께 논산 3대 명물이다.

충북 괴산군은 이 보다 엄청난 초대형 가마솥을 만들었다. '규합총서(1809년) 8도 조’에 괴산 가마솥이 소개된 것을 근거로 했다. 개태사 철확이 일시 괴산에 옮겨진 것을 기록했다는 설도 있다. 2003년 당시 괴산군수가 “군민이 한솥밥을 먹는다.”는 화합 취지로 5억을 마련해 제작했다. 2005년 완성됐다. 둘레 17.85m, 상단 지름 5.68m, 높이 2.2m, 두께 5㎝다. 본체와 뚜껑을 합쳐 주철 43.5t이다.

밥 짓기나 옥수수 삶기, 팥죽 끓이기도 실패했다. 위아래 온도 차로 아래는 새까맣게 타고, 맨 위는 설익는 ‘3층 밥’이 됐다. 세계 최대로 기네스북에 도전했으나, 호주 질그릇에 밀렸다. 이전비용만 2억이 돼 활용방안을 찾지 못하고, 괴산군 고추유통센터 광장에 방치된 애물단지다.

충북도는 12일 전 국민을 대상으로 '괴산 가마솥 관광자원화 활용방안' 찾기 아이디어 공모를 시행한다고 밝혔다.

반면, ‘나비축제’로 유명한 전남 함평군은 2005년 28억을 들여 ‘황금박쥐 조형물’을 만들었다. 혈세낭비 비판이 제기됐다. 순금 162kg과 은 281kg이 들어가 과잉투자와 전시행정 표본으로 지적됐다. ‘황금박쥐상’을 만들고 남은 재료로 난생신화를 근거로 ‘황금박쥐 오복포란’을 만들었다. 황금박쥐상은 가로 1.5m, 높이 2.1m다. 원형은 은으로, 막 날아오르는 박쥐 6마리는 금으로 만들었다.

국제 금값이 폭등해 황금박쥐상과 오복포란 평가액은 올해 7월 13일 기준, 133억여만 원으로 치솟았다. ‘함평 황금박쥐생태전시관’에 보관됐다. 멸종된 것으로 알려진 황금박쥐가 1999년 함평 대동면에서 무더기 발견됐다. 멸종위기 동물보호 및 교육을 위해 전시관이 개관되고 황금박쥐상도 만들어졌다.

처음에는 ‘황금박쥐상’이나 ‘가마솥’이나 혈세낭비·전시행정 비판을 받았었다. 그러나 금값 폭등으로 함평 황금박쥐상은 유명해졌다. 괴산 가마솥만 천덕꾸러기다.

충북 괴산은 일완 홍범식 고택이자 임꺽정을 지은 아들 벽초 홍명희 생가가 있다. 태인군수와 금산군수를 역임한 홍범식은 경술국치에 자결했다. 충절과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괴산군은 조만간 초대형 가마솥 용도를 찾게 될 것이다.

‘인간만사 새옹지마’다. 노역으로 수많은 사람을 죽고 다치게 한 ‘만리장성과 피라미드’가 세계 관광자원으로 후손들을 먹여 살린다. 가마솥이 황금박쥐처럼 훨훨 비상하는 날이 오기를 고대한다./편집국장 고재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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