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말문 / 최명길
우리가 처음 만났던 날은
단풍이 붉었다.
천진* 소나무 숲을 지나서야
그녀가 첫 말문을 열었다.
“저는 아무것도 몰라요”
나에게 들려준 첫 말 한마디
아무것도 몰라요.
청간천 다리를 건너
호롱불빛 내다보는 초가 앞까지
그녀를 바래다주며
두어 번 옷깃이나 스쳤을까
초가을 달빛이 갈댓잎에 부딪혔다가
싸락싸락 떨어지고
그때마다 여울 물살은 아프게 울었다.
동해가 그 아래서 으르렁대고
저는 아무것도 몰라요.
* 천진 : 천진은 이쁜 마을이었다. 이 마을을 중심으로 남녘으로는 순채 순 가득한 천진 호수가 맑고 북녘에는 관동팔경의 하나인 청간정이 다락처럼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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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결말을 예감하면서도 이끌리는 관계가 있습니다. 어느 가을날, 남자와 여자는 처음 만났습니다. 첫눈에 반했는지 마음이 “단풍”처럼 온통 붉게 물들었습니다. 그날 밤, 남자는 “청간천 다리를 건너/ 호롱불빛 내다보이는 초가 앞까지” 여자를 바래다줍니다. “동해가 그 아래서 으르렁대고 있는데” “아무것도” 모른 채 사랑에 빠진 연인들…… “초가을” “갈댓잎”처럼 몇 번 “싸락싸락” “옷깃”이 스쳤으나 “물살은 아프게 울었다”고 하는 걸 보니 끝내 맺어지지는 못했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