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겨울이라 나의 언어는 빈약합니다 /김조민
겨울이 되면 이 거리는 바람으로 가득합니다
사람들은 서둘러 얼굴을 감싸 쥔 채 거리를 떠났고
떠나지 못한 지난 계절의 부스러기가
알 수 없는 소문과
더 낡아버린 보도블록 사이 죽은 비둘기와
벌어진 틈을 찾지 못해 죽지 못한 비둘기들이
바람 속에서 닳고 있습니다 나는
이 헛된 거리의 웅덩이에 쪼그려 앉아
늙어가는 바람의 형식을 존경의 눈으로 바라봅니다
나는 아무 말 하지 않았어요 단지
왔다가 가 버렸고 다시 오지 않는 신념들에 대해
허우적거리는 자음과 모음에 대해
아직 새벽 여섯 시가 되지 않아 잠들지 못하는
단어들의 불평에 대해
바람에 귀를 기울이지만 들리는 것은
오로지 바람뿐이라 나의 언어는 빈약합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바람은 봄부터 가을까지 숨죽이고 때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세상을 온통 초록빛으로 물들이던 나무들이 하나둘 낙엽을 떨구며 힘을 잃으면 그 틈을 타서 바람은 야심을 드러냅니다. 날을 세우고 달려드는 바람을 만난 “사람들은 서둘러 얼굴을 감싸 쥔 채 거리를” 떠납니다. 바람에 점령당한 텅 빈 거리를 미처 떠나지 못한 “비둘기들”은 칼바람에 쓰러져 죽음을 맞습니다. “죽지 못한 비둘기들”은 온몸으로 바람에 맞서다 점점 닳아 갑니다. 겨울밤, 바람에 날려 “허우적거리는 자음과 모음”을 구하려고 애쓰느라 시인은 오래도록 잠들지 못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