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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텔서 '얼굴 함몰' 여대생 시신…"내가 밟았다" 자백에도 '무죄', 무슨 일?

  • 입력 2024.03.18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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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살인사건이 벌어진 이태원 소재의 금성장여관. 사진은 2010년 3월 촬영.  (네이버 지도 갈무리)
2001년 살인사건이 벌어진 이태원 소재의 금성장여관. 사진은 2010년 3월 촬영. (네이버 지도 갈무리)

[내외일보] 이현수 기자 = 2001년 3월 18일 일요일 오전 8시. 이태원에 위치한 모텔 '금성장' 103호에서 떠나갈 듯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1박에 3만 원. 좁고 허름한 여관방 한 가운데 알몸 상태의 여성 시신이 발견된 것이다. 재킷으로 가려져 있던 얼굴은 발로 밟아 뭉갠 듯 함몰된 상태였다.

시신이 많이 훼손돼서 육안으로는 누군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103호 투숙객 일행은 시신의 등을 확인해달라고 요청했다. 등에는 '유나이티드 스테이트(united states)'라는 타투가 적혀 있었다.

피해자는 미국 펜실베이니아 출신 여성 제이미 린 페니시(당시 22세)였다. 인류학, 종교학을 복수 전공한 그는 대구 K 대학교 봄학기를 수강하던 교환학생이었다.

◇ 이태원 술집서 미군과 어울렸던 피해자, 6시간 뒤 돌연 사망

K 대에는 제이미 말고도 19명의 외국인 교환학생이 있었다. 이들 중 친분이 두터운 7명은 주말을 맞아 서울 여행을 계획했다.

여행 첫날인 16일 이들은 여행사에서 추천받은 이태원 금성장 여관을 101호부터 104호까지 4개를 예약한 뒤 남산, 남대문, 한옥마을 등 곳곳을 구경했다.

다음 날인 17일은 서양인들에게 특별한 날이다. 아일랜드 출신 성인인 패트릭(385~461년)을 기리는 '성(聖) 패트릭 데이'로, 서양에서는 축일로 여긴다.

102호에 있던 핀란드 출신의 커플은 피곤하다며 숙소에 남았고 나머지 5명은 오후 9시쯤 여관 밖으로 나갔다.

일행은 이태원을 구경하다 한 바(Bar)에 자리를 잡았다. 이날은 외국인뿐만 아니라 주한미군들도 많았다. 시간이 흘러 1시 45분쯤 되자 제이미와 켄지를 제외한 3명이 피곤하다며 숙소로 돌아갔다.

제이미, 켄지는 미군으로 추정되는 남자들과 이야기도 나누며 마지막까지 어울려 놀았다. 그리고 6시간 뒤 제이미는 103호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 News1 김지영 디자이너
ⓒ News1 김지영 디자이너

◇ 시신 옆에 잠든 일행…투숙객들 "화난 美 남성 목소리 들렸다"

경찰은 제이미를 처음 발견한 네덜란드 여학생 안네로를 상대로 조사를 진행했다. 안네로는 "나는 먼저 숙소에 돌아와서 샤워도 안 하고 바로 잠들었다. 그리고 제이미가 들어올 수 있게 문도 잠그지 않았었다. 깊게 잠드는 스타일인 데다 그날은 술도 마셨기 때문에 누가 들어오는 소리도 못 들었다"며 결백을 호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바로 옆에서 벌어진 일인데 아무 소리도 못 들었다는 게 말이 되냐"며 의문을 제기했다. 이때 안네로는 "자는 사이에 누가 방문을 열었다가 바로 닫은 것만 기억날 뿐 아무것도 모르고 잠을 잤다"며 말을 바꿨다.

제이미와 마지막까지 남아 있었던 켄지의 진술은 어땠을까. 켄지는 "3시 15분까지 바에서 술을 먹다 숙소로 왔다. 제이미가 목욕한다며 속옷만 입은 채 욕실로 들어갔고, 나는 물을 틀어주고 내 방에 들어왔다"고 했다.

또 "제이미가 걱정돼 다시 103호 앞에서 문을 두드리며 괜찮냐고 물었더니 괜찮다고 하길래 문을 열지 않고 들어와서 잤다"고 진술했다.

102호에 투숙한 핀란드 커플 중 여학생은 "문밖에서 화가 난 미국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두 명 이상 걷는 소리와 여자 신음도 났다"고 진술했다. 이어 "무서워서 옆에서 자고 있던 남자 친구를 깨웠으나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4시쯤 잠이 들었다"고 전했다.

경찰은 여관 여주인과 투숙객을 상대로 참고인 조사를 벌였다. 여주인은 "103호 방향에서 백인 남자가 걸어 나왔다. 바지에는 피가 묻어 있었다"고 진술했다.

또 다른 투숙객도 비슷한 증언을 내놨다. 그는 "3시 30분쯤 복도로 나오니 한 미국인 남자가 103호 방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머리는 삭발 형태였다. 군인처럼 보였다"고 진술했다.

◇ 수사 부진에 유족, 美 각계각층 탄원→한미 합동수사 본격화

경찰은 목격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미군이 범행에 연루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 미육군범죄수사대(CID)에 공조 수사를 요청했다. 그러나 용의선상에 오른 미군들이 다른 곳에 있었다는 알리바이가 입증되면서 모두 풀려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인물이 지목됐다. 마이클이라는 남학생이었다. 숨진 제이미의 지갑 안에서 그의 이름표가 발견됐다. 마이클은 K 대에 다니는 교환학생이었지만, 여행을 함께한 일행은 아니었다.

ⓒ News1 DB
ⓒ News1 DB

여관 여주인의 결정적인 증언도 있었다. 마이클의 사진을 본 여주인은 새벽에 목격한 남자가 맞다고 진술한 것. 하지만 마이클이 사건 당일 대구에 있었다는 알리바이가 입증되면서 수사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수사가 지지부진하자 유가족은 백악관, 의회, 국무부 등 각계각층에 탄원서를 냈고, 상원의원까지 나서면서 한미 합동 수사가 시작됐다.

새로 꾸려진 수사팀은 모든 이들의 증언과 알리바이를 들여다보며 원점에서 수사를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켄지의 진술과 현장 상황에 상당한 모순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하지만 켄지는 학기를 마치기도 전에 유학을 끝내고 미국으로 간 상태였다. 수사팀은 켄지를 조사하기 위해 미국으로 향해야 했다.

캘리포니아의 한 호텔에서 수사팀과 마주한 켄지는 묵비권을 행사하다 결국엔 범행을 자백했다. 내용에 따르면 사건 당일 바에서 숙소로 와서 제이미와 103호에 들어갔다. 안네로가 자고 있는 것을 확인한 후 두 사람은 입맞춤 등 스킨십을 나눴다. 켄지는 제이미가 바지를 벗기려고 하자 순간적으로 화가 나 밟았다고 진술했다.

◇ 1년 9개월 만에 송환된 유력 용의자…"허위로 자백" 주장

켄지는 2002년 12월 한국에 송환됐다. 사건 발생 1년 9개월 만이었다. 당시 언론도 이 사건을 크게 주목했다. 1999년 한미 범죄인 인도 협정이 체결된 이후 미국인이 한국으로 소환된 첫 사례였기 때문이다.

ⓒ News1 DB
ⓒ News1 DB

켄지는 형사들과 함께 현장 검증을 시작했다. 이태원 식당과 술집을 돌면서 동선을 확인해 갔다. 그녀와 형사들이 마지막으로 향했던 곳은 금성장 여관 103호였다.

불안해하던 켄지는 갑자기 평온을 되찾더니 돌연 진술을 번복했다. 그는 "나는 심문팀의 유도심문에 넘어가 허위자백을 했으며 제이미를 절대 죽이지 않았다"고 했다. 또 "콜린 파월이 주한미군을 보호하기 위해 나를 한국에 보냈다"고 주장했다.

재판은 그대로 진행됐다. 2003년 6월 19일 서울지방법원 서부지원에서 열린 1심 결과는 무죄였다. 켄지를 범인으로 확정할 증거가 없다는 게 이유였다. 4개월 뒤 열린 항소심에서도 무죄가 선고됐다.

2006년 1월 대법원에서도 결과는 뒤집히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수사 과정에서 자백했다는 수사기관(미국)의 진술이나 수사보고서는 피고인이 공판 과정에서 자백 내용을 부인하는 이상 증거능력이 없다"며 무죄 판결을 내렸다.

◇ "혈흔 묻은 족적 감식 안 이뤄져"…보존 미흡, 초동수사 실패

사건이 미제로 남은 건 초동수사 실패가 원인으로 꼽힌다. 현장에는 혈흔이 묻은 범인의 족적이 곳곳에 찍혀 있었지만 족적에 대한 감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급기야 현장에 들어온 경찰들의 족적과 뒤섞여 증거 효력을 잃고 말았다.

더구나 범행 추정 시간 현장에 있던 남성을 목격한 유일한 증인인 여주인의 진술이 힘을 잃어 안타까움만 더했다. 여주인의 진술대로라면 유력 용의자는 남성이어야 하지만, 초기에 그가 본 남성이 마이클이라고 잘못 지목했던 게 드러나자 수사팀은 여주인에게 어떠한 협조도 구하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주한미군사령관이 미군의 명예가 훼손되는 걸 막기 위해 미군을 용의선상에서 아예 배제했고, 이 때문에 미제로 남았다는 말이 돌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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