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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기자명 최형심 시인

[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 강영은의 ‘설계(設計)’ 해설

  • 입력 2024.03.29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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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設計) / 강영은 

 

  나는 내가 빈집일 때가 좋습니다.

  침묵이 괴물처럼 들어앉아 어두운 방을 보여줄 때 고독한 영혼이 시간과 만나 기둥이 되는 집, 증거 없는 희망이 슬픔과 만나 서까래가 되는 집,

  우주의 법칙을 속삭이는 별빛과 그 별빛을 이해하는 창가와 그 창가에 찾아든 귀뚜라미처럼 우리는 하나의 우주 속에 들어 있는 벌레라고 우는 집,

  희고 깨끗한 미농지를 바른 벽이 도면에 있어 닥나무 껍질에 둘러싸인 물질의 영혼처럼 영혼의 물질처럼 나는 당신 안에 있고 당신은 내 안에 있어 충만한 집,

  내가 알고 있는 숲은 결코 그런 집을 지은 적 없어 새장 같은 집을 그릴 때마다 영혼을 설계하는 목수처럼 종달새가 날아와 얼기설기 엮은 노래로 담장 쌓는 집,

  수백 년 묵은 팽나무가 지탱하는 그 담장에 걸터앉아 떠오르는 해와 지는 해를 바라보는 일, 그것이 빈집의 업일지라도

  욕망의 가구가 놓여 있지 않은 그런 빈집이 나였으면 좋겠습니다. 가슴 다친 새가 앉았다 가는 내 집이 멋지지 않아서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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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심 시인
최형심 시인

휴대전화 하나만 있으면 어디에 있더라도 다른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때문에,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는 한 온전히 혼자가 될 기회가 거의 없습니다. 많은 철학자들과 위대한 예술가들이 그들의 생을 통해서 증명했듯이 온전히 혼자가 될 수 있을 때, 인간은 자신의 내면에 “고독한 영혼이 시간과 만나 기둥이 되는 집”을 지을 수 있습니다. “욕망의 가구가 놓여 있지 않은” “빈집” 한 채로 설 수 있어야 비로소 “영혼”의 물성(物性)으로 그 안을 채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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