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차일혁’ 토벌대장과 내장사 대웅전 방화 승려
[칼럼] ‘차일혁’ 토벌대장과 내장사 대웅전 방화 승려
  • 고재홍 기자
  • 승인 2021.03.08 15: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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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외일보=호남]고재홍 기자=“2012년 화재로 소실된 내장사 대웅전을 정읍시 시비와 성금 등을 들여 2015년 복원한 지 6년도 안 돼 술 취한 승려 방화로 다시 태우다니. 법복을 입은 스님이 일반인도 못 할 사찰에 불을 지르다니 말도 안 됩니다.”

천년고찰 내장사 대웅전에 승려가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질러 5일 전소되자 국민들은 “원인을 철저히 규명해 엄벌하고 시비가 아닌 조계종 스스로 세워 혈세로 세운 문화재가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해야 한다.”며 강한 분노를 표출한다.

‘숨겨진 것이 무궁무진’하다는 내장內藏산이 포함된 내장산국립공원은 정읍시·순창군·장성군 등 전남·북 2개 도 3개 시군에 걸쳐있다. 정읍 내장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인 고창 선운사 말사다.

대웅전을 포함한 사찰이나 한옥 형태 국보 등은 방화나 실화, 산불 및 전쟁 때 불태워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부처나 절을 우상으로 여기는 특정 광신도 방화도 있다. 고려말 몽고 침입 때 불태워진 경주 황룡사나 임진·정유란 및 6.25에 군경 빨치산 토벌과정에서 불태워진 것도 많다. 내장사 대웅전이나 부안 변산 실상사도 이때 불태워져 실상사는 현재도 극히 일부만 복원됐다. 강원도 낙산사는 산불로 많은 전각과 문화재가 소실·파괴됐다. 국보 1호 남대문(숭례문)도 방화로 전소돼 수백억 원을 들여 복원됐다.

내장사는 백제 무왕(636년) 영은조사가 영은사로 창건했다. 조선 명종(1557년) 희묵 대사가 영은사 자리에 중창하고, 내장사로 개칭했다. 이후 ‘정유재란’ 때 사찰이 전소됐으나 누차 중창 등을 거듭하다가 1951년 1월 ‘빨치산 토벌’ 과정에서 대웅전을 포함한 내장사와 암자가 전소됐다. 20여 년 복원으로 내장사가 본 모습을 찾았으나 2012년 ‘누전으로 추정되는 화재’로 대웅전이 전소됐다. 정읍시가 나서 시비와 성금 등을 합쳐 25억을 들여 대웅전을 복원한 것이 2015년 8월이니 6년이 안 됐다. 몇 달 전, 내장사에 온 승려 A(53) 씨가 이달 5일 휘발유를 끼얹고 불을 질러 대웅전이 전소됐다. 승려 방화로 혈세 등이 들어간 대웅전이 네 번째 전소됐다. 스님 신분에 석가모니 등을 모신 대웅전을 불태운 것은 제정신이 아니다. 경찰 수사로 정확한 원인이 밝혀지겠지만 무종교인 필자도 말할 수 없는 황당 사건이다. 교구 본사 선운사는 6일 입장문에서 ‘내장사 대웅전 방화 소실’에 극도의 참담과 참회 심경을 표명했다.

내장사 대웅전이 승려 방화로 전소된 사건과 달리 6.25에 경찰 신분에도 빨치산 근거지를 없애라는 상부 명령을 지혜롭게 대처해 구례 화엄사 등을 구한 ‘차일혁(1920-58)’ 경무관이 특히 생각난다. 김제 금산면에서 태어난 차 경무관은 중국 황포군관학교를 졸업하고, 1943년까지 조선의용대에서 항일유격전을 전개했다. 해방 후 경찰에 특채돼 ‘빨치산 토벌대장’으로 복무한다. 인천 상륙과 9.28 서울 수복으로 퇴로가 막힌 자생 공산주의자와 북한군은 지리산·회문산·내장산·변산 등 전국 험준한 산악으로 들어가 빨치산이 된다. 낮에는 은신했다가 밤에는 민가로 내려와 식량과 가축을 보급투쟁을 한다며 빼앗아갔다. 특히 스님들이 거주하는 사찰은 빨치산 은신처 및 식량 보급로로 활용됐다. 이들 근거지를 없애기 위해 화엄사 등 주요 사찰을 불태우라는 지시가 내려온다. 이때 불탄 것이 부안 실상사와 정읍 내장사 등이다. 그러나 차일혁은 “절을 불태우지 말라. 절을 태우는데 한나절이면 족하나, 절을 세우는 데는 천년 세월도 부족하다.”며 화엄사 등을 소각하라는 상부 명령을 거부했다. 대신 “문짝이 없으면 빨치산이 숨을 수 없다.”며 화엄사 대웅전과 국보 67호 각황전 문짝만 떼어 불태우는 사진으로 상부에 보고한다. 지리산 일대 화엄사와 쌍계사, 천은사 등이 화마에 소실될 위기에서 벗어난다. 국보 각황전 보전은 무엇보다 탁월한 공로다. 전쟁 후, 1958년 조계종 초대 종정 효봉 스님으로부터 화엄사를 지킨 공로를 인정받아 감사장이 수여됐다. 1998년 화엄사는 경내에 공적비를 건립했으며, “절을 불태우지 말라. 절을 태우는데 한나절이면 족하나, 절을 세우는 데는 천년 세월도 부족하다.”는 그의 어록은 돌에 새겨졌다. 문화재청도 2008년 감사장을 추서했으며, 경찰청은 2011년 차일혁 총경을 경무관으로 승진·추서했다.

차일혁 경무관이 화엄사 등을 구한 이후에도 변산은 빨치산 토벌을 위해 수백여 채 민가 등이 불태워지고 피아간에 죽고 죽이는 살육전이 전개됐다. 1953년 7월 휴전이 됐으나 이듬해야 변산 빨치산이 토벌됐고, 고창 선운산도 비슷했다. ‘남부군’이라는 영화로 만들어졌던 지리산은 훨씬 참혹했다. 6.25 빨치산 토벌과정에 “절을 불태우라.”는 상부 명령을 따르지 않고 사찰을 지킨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자칫 명령 불복뿐 아니라 사상이 의심된다는 의혹을 받을 수 있다. 차일혁 경무관은 실제 이런 모함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간 무수한 사찰 화재는 실화나 방화 및 전쟁통에 벌어졌다. 수많은 문화재가 소실되거나 파괴됐다. 그러나 이번 내장사 대웅전처럼 거주 승려에 의한 방화로 인한 전소는 보도 듣지도 못한 황당 사건이다. “함께 생활하던 스님들이 서운하게 해 술을 마시고 불을 질렀다.”는 승려와 죽고 죽이는 전쟁통에 많은 사찰을 구한 차일혁 경무관이 극도로 대비된다. 몸만 절이나 교회에 있다고 부처나 하나님에 다가가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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