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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기자명 최형심 시인

[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 김유석의 ‘유월’ 해설

  • 입력 2021.06.03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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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 / 김유석

 

보리밥나무 열매 속으로 붉음이 스며든다. 붉음은 유월에 익는 것들의 감정.

비긋이 열린 마당을 적시는 눈시울이 생혈 같다. 푸른 몸에 밭는 붉음은 공연히 서럽고

빈집을 들른 저 빛은 뒤늦게 건네는 기별 같아서 마당귀 늙은 감나무의 귀가 닳고

붉음이 제 몸을 휜다. 가지 아래 더운 숨결이 고인다.

그늘을 쓰면 해묵은 배고픔이 내려 얹히는 한 철

저 붉음은 어디서 오는가, 보리누름 들판 망연히 지켜 선 몸에

사무치듯 벌레가 끓는다. 붉음이 벌레들을 끈다.

그렇게 밖에는 지울 수 없는 제 몸의 붉음을 맛보며 나무는 늙고

익는다는 것은 조금 늦게 오는 통감痛感, 저 붉음으로 다시 들 곳 이번 생에는 없어

저절로 짓무르는 기억들…… 버려지듯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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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심 시인
최형심 시인

보리밥나무는 남쪽 해안지대나 섬에서 자라는 나무입니다. 10~11월에 작은 종 모양의 은백색 꽃을 피우고는 특이하게도 이듬해 봄에 열매를 맺습니다. 열매의 모양이 보리 밥알처럼 생겼다고 해서 보리밥나무라고 한다는 설도 있고, 보릿고개를 지날 즈음 빨갛게 열매가 익어가기 때문에 그렇게 불린다는 설도 있습니다. 열매는 시큼 떨떠름하기는 하지만 단맛이 있어서 보릿고개를 넘는 아이들의 배고픔을 달래주곤 했습니다. 시인은 빈집이 된 옛집 마당에 떨어진 붉은 보리밥나무 열매를 보며 서러워집니다. 나이든다는 것은 익는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저절로 짓무르는 기억들로 아파해야만 하는 것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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