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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기자명 최형심 시인

[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 정혜영의 ‘직사각형의 흙’ 해설

  • 입력 2022.12.02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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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사각형의 흙 / 정혜영

 

살아남은 자들은 죽은 사람의 배경

직사각형의 구덩이 앞에서 희미하게 기다리고 있다

검은 얼굴 검은 정장을 하고

구덩이를 파던 삽을 흙더미 위에 내던지고 노란 장미를 한 손에 들고

커다란 그늘막 속에 살아남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

태양은 자꾸만 움직이고 그늘은 줄어들고 그림자들은 조금씩 자리를 이동한다

햇빛이 노랗게 구덩이 속을 비춘다

하얀 국화 꽃잎이 그녀를 향해 떨어지고 있다

직사각형의 흙이 소리를 내며 말라가고 있다

검은 리무진을 따라 버스를 탄 사람들

선글라스를 쓴 사람들이 두 손을 모으고 기다리고 있다

구덩이를 파던 포클레인 버킷이 흙더미 옆에서 기다리고 있다

슬픔으로 하나가 된

원수와 친지와 친구와 이웃과 원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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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심 시인
최형심 시인

땡볕 아래 장례식이 진행됩니다. 사람들이 직사각형 구덩이를 둘러싸고 하관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머리 위에는 한낮의 태양이 열기를 뿜고 있고, 뜨거운 태양을 피해 그늘막 아래 사람들이 모여있습니다. 커다란 그늘막 속에서 검은 옷과 검은 선글라스를 쓰고 기다리는 사람들. 그늘막이 만드는 그늘은 점점 줄어들고 그늘 속을 파고드는 사람들의 그림자도 조금씩 자리를 옮깁니다. 그 뒤에는 포클레인이 흙더미 옆에서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윽고 정오의 태양이 하얀 국화와 함께 관 위로 쏟아지고 직사각형으로 덮인 흙이 말라갑니다. 이 작품은 영원한 헤어짐 앞에서도 걷어낼 수 없는 지루한 기다림의 풍경을 통해 삶이 얼마나 연약한 것인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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