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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기자명 최형심 시인

[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 안차애의 ‘왼쪽 귀를 간지럽히는 빗소리처럼’ 해설

  • 입력 2022.12.15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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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귀를 간지럽히는 빗소리처럼* / 안차애

 

물방울의 망막에 맺힌 풍경이 건너온다
기억과 망원렌즈 사이의 굴절일 수도 있다

반은 가려져 있고
나머지 반의 절반은 흔들리거나 흘러내리는
여자와 택시와 길들

식어가는 중인가 미열이 오르는 중인가
건너가는 중인가 돌아오는 중인가
어렴풋이 돋아나는 중인가
희미하게 스러지는 중인가

빨강 우산이 무중력의 눈길을 밀어 올린다
컷과 컷 사이로 행복이라는 어리석음이, 찰칵
끝이 흐린 플래시를 터뜨린다
노란 택시가 틈과 그때의 방향을 몰고 가고,

순환구조형식이어서
어디에도 도착하지 않는다

눈송이와 빗방울이 길을 묻지 않듯
점, 점, 점
휘날리는 목적지들

왼쪽 귀를 간지럽히는 빗소리처럼
내 안에서 떠도는, 창문 밖의
온도들

  

*사진작가 사울 레이트(Saul leiter)의 다큐멘터리 중에서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모든 움직이는 것에는 방향이 있습니다. 그게 직선일 수도 있고, 곡선일 수도 있고, 때로는 지그재그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움직이는 모든 것이 목적지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누군가와 막 헤어진 여자를 태운 택시 한 대가 빗속을 달려갑니다.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져 내리던 빗방울들이 차 유리창에 부딪혀 흘러내립니다. 소중한 이를 잃어버린 여자도, 땅에 닿기도 전에 흩어지는 빗방울도, 종일 손님을 태우고 떠돌아다니는 택시도 목적지를 상실한 채 그저 앞으로만 달리고 있습니다. 그때, 빨간 우산을 쓴 이가 택시 앞을 가로질러 갑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사진작가가 셔터를 누릅니다. 목적지를 상실한 점과 점들이 맞물려 하나의 장면을 이룹니다. 현대인의 일상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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