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선화에게 / 나금숙
문 안에 들어서면
세 번 꺾어 들어가는 길이 있다
돌을 얹어 문을 표시한 곳을
지나가면
철제의자가 있고
나무를 깎아 만든 테이블이 있다
테이블 곁에
밀창 넘어 와 넘실거리는
달빛을 담는 침대가 있다
다탁이 있고
달빛 묻은 가벼운 커튼
돌돌 왔다 가는 도랑이 있다
별이 차가운 밤
층층나무 언덕 올라가면
종이거울에 지나간 허물이 떠오른다
아무나가 오지 않아도 좋아
나는 아직 나를 사귀지 못했어
자갈밭이 걸어오는 소리
바다 건너
블랙오크 나무 걸어오는 소리
기쁨 희망 슬픔 분노 원망 불안을
조금씩 배합하여
이슬을 섞어 땅에 심어보았어
이런 이종교배
너라는 씨앗
이 섞임은 흙도 혼란스럽다
혀가 갇힌 흙은 말해줄 수가 없다
이 혼종이 싹이 틀지를
회항한 새들은 눈치채었지
그래서 수정
물가에서
날개에 물을 묻혀보는 거야
숨비소리에
숲에서는 꽃가루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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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시대입니다. 소셜미디어의 유행으로 화려하고 행복해 보이는 남들의 겉모습만 보며 우울감에 빠지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식상한 이야기 같지만, 해결책은 언제나 우리의 내면에 있습니다. 화자는 소란한 세상에서 잠시 벗어나 내면으로 “들어가는 길”을 따라갑니다. “별이 차가운 밤”, “달빛 묻은 가벼운 커튼” 곁에 앉아 생각에 잠깁니다. 그리하여 “기쁨 희망 슬픔 분노 원망 불안” 등등 복잡한 “이종교배”로 이루어진 대체 불가능한 피조물이 “나”임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제정신으로 살아가기 힘든 세상, 때로는 신화 속 나르키소스가 물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했듯, 나를 “물속”에 비춰보고 칭찬해주며 스스로에게 “날개”를 달아줄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