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구나 / 조창환
볕 좋은 날, 길일(吉日)을 택해
까치살모사 허물 벗어 놓고 다른 세상 구경 갔구나
허물 벗은 자리에 민들레 곱구나
밭고랑에 던져 둔 호미 날 같은 낮달 곱구나
송아지 핥아주는 어미 소 같은 아지랑이 곱구나
곱구나, 까치살모사 가묘(假墓) 곁에
그늘 곱구나, 봄날 곱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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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날 것 같지 않던 겨울도 어느덧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 봄소식이 우리에게 날아올 날도 멀지 않았습니다. 어느 봄날, “밭고랑에 던져 둔 호미 날 같은 낮달”이 하얗게 질린 채 망을 보고 있습니다. 바위틈에서 따스한 햇볕을 받으며 “까치살모사”가 “허물”을 벗고 있습니다. 지켜보는 세상도 속이 타는지 사방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릅니다. 이윽고 몸이 다 빠져나가고 까치살모사의 빈 껍데기만 남았습니다. 그 곁에서 “민들레”가 안도하듯 깊은숨을 내쉬며 흔들립니다. 세상에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는 게 봄날입니다. 독을 품었던 자리마저 저리 고우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