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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기자명 최형심 시인

[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 최호빈의 ‘호흡공동체’ 해설

  • 입력 2023.05.24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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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흡공동체 / 최호빈

 

먼 친척뻘 되는 사람을 만나러 갑니다
당신의 뿌리와 나의 뿌리가
아프리카의
깊은 땅속에서 만난다지요

먼 친척뻘 되는 사람을 만나려는 여행자들이
긴 줄을 만듭니다
공항을 한 바퀴 돌고 와도
줄은 그대로입니다
줄이 아프리카의 깊은 땅속에
먼저 도착할 것 같습니다

밤이 되면
비행기는 거꾸로 날아갑니다
새가 달 속에 있는 위를 봐도
달이 구름 속에 있는 아래를 봐도
뜻밖의 별이 있는 광경을 보게 됩니다
10만 년 전에 사라진 별빛과
15만 년 전에 사라진 별빛이 함께 날아갑니다

오래전부터
서로 다른 종끼리
짝짓기를 해왔던
우리들의 이주가 시작됩니다
10만 년 전으로
15만 년 전으로

서로가 서로를 몰라보는 풍토병에 걸린 것처럼

 

__________________________

최형심 시인
최형심 시인

호모사피엔스는 아주 오래전 아프리카를 떠나 수만 년의 시간에 걸쳐 남반구에서 극지방까지 퍼져나갔습니다. 비록 피부색은 달라도 우리는 모두 그 옛날 아프리카를 떠난 조상의 후손들입니다. 그래서일까요? 먼 곳의 친척들을 만나고 싶은 본능에 이끌린 사람들로 공항은 늘 붐빕니다. 그리고 비행기를 타고 밤하늘을 날아갈 때, 우리는 조상들이 아직 아프리카 초원에 머물러 있던 시절 머나먼 우주 저편에서 폭발한 별빛을 만나게 됩니다. 생각해보면 이 넓은 우주에서 지능을 가진 생명체로 태어나 10만 년도 더 전에 먼 우주 저편을 떠난 별빛을 만난다는 것은 엄청난 기적입니다. 그러니 창밖의 별빛 하나도, 우연히 옆자리에 앉은 낯선 사람도, 소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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