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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기자명 최형심 시인

[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 최승자의 ‘백합의 선물’ 해설

  • 입력 2023.05.31 12:23
  • 댓글 0

백합의 선물 / 최승자

 

언젠가 한 점쟁이가 내게 말했었죠

“당신은 전생에서 이생으로 내려올 적에

길가에 난 백합꽃을 꺾었어. 백합꽃

꺾은 죄로 이생에서 이 고생을 하는 거라구”

가끔씩 힘들 때마다 “내려오다 백합은

왜 꺾어 이 고생이누, 아니 하필이면

내가 내려오는 그 길에 백합은 왜 피어 있었누”

라고 생각했지만, 그 참 이제 보니 그건

아름다운 상징일 수도 있다는 생각 드는군요

아니 상징이 아니라 어쩌면 필연이었다는

하필이면 거기에 백합이 피어 있었던 것도

하필이면 내가 그것을 꺾어 갖고 왔던 것도

어쩌면 필연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그 모든 고통이 정화된 그 자리에

백합 한 송이 피어나, 이제 비로소 그 존재를,

그리고 용도를 내게 알려주고 있으니까요

내가 당신의 힘을 빌려 내 무수한 전생들

그리고 이생에서 보냈던 모든 시간들을

폐지해 버린 자리, 내 마음의 작은 빈터 안에

내가 사랑하는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꽃,

백합꽃을 선물로 놓아 드릴 수 있으니 말입니다

그 한 송이 백합이 어느 날 넘실대는 환한

빛 덩어리로 풀려 버릴 수 있길 바라면서

 

_____________________

최형심 시인
최형심 시인

살다 보면 대체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렇게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야 하나 싶을 때가 많습니다. 시인은 세상으로 오는 길에 그만 “백합”을 꺾어서 이생에서 고생을 하는 것이라는 점쟁이의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왜 하필 백합을 꺾어서 이 고생인지 한탄을 하다가 백합이 어떤 “아름다운 상징”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필이면 거기에 백합이 피어 있었던 것도” 그걸 꺾어서 가지고 온 것도 어쩌면 “필연”일지도 모른다, “그 모든 고통이 정화된 그 자리에/ 백합 한 송이 피어나” 그 꽃을 “사랑하는” 이에게 “선물”로 줄 수 있게 된다면 멋진 일 아닌가, 하며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로 합니다. 시인의 말처럼 이 모든 삶의 고통이 한 송이 백합을 피우기 위한 것이라면 그래도 견딜만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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