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여름, 두 번째 천변에서 / 기혁
누군가를 떠올리면 이름보다 먼저
빛나는 부위가 있다
바람을 보는 눈이라던가
사시사철 봄볕을 숨겨둔 손
초록의 쓴맛을 소리로 바꿔주는 귀
머리의 명령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발
불협화음의 기억 속에서
만난 적 없는 한 사람이 걸어 나올 때
그런 온전한 모습이
사랑스러울 때
출생의 흔적과 절명의 흔적을 희석한 강물이
당신과 나 사이에 흐른다
같은 감정에 두 번 발을 담그는 것은
반칙이었지만 우리는 비로소
불순물처럼 서로를 바라보고
어깨를 쓰다듬는다
불투명한 여름의 투명한 전언에 대하여
고백의 근거지를 둘러싼 무수한
음모론에 대하여
사랑을 모르면 우주를 짊어질 수 있다는 당신의 어깨와
무중력의 해이 사이에서
도무지 빠지지 않는 발을 남기고 나왔다
여름의 초록이 검정이 될 때까지
검정의 내부가 한없는 투명의 겹침이 될 때까지
젖음의 모노포니*는 내일에만 들리는 신청곡 같은 것
가능성이라는 말, 이따금 슬픔으로 향하는 강가에서
당신의 어깨를 만진다
수북하게 쌓인 우주의 먼지를 툭툭
털어보는 것이다
* 화성이나 대위법적인 요소가 없이 하나의 성부로만 이루어진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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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떠올리면” 마음에 햇살이 내려앉는 기분이 드는 때가 있습니다. 꽃처럼 환한 얼굴, 봄볕처럼 따스한 손길, 내 떨리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연한 귀, 바람이라도 바라보는지 허공을 응시하는 아름다운 눈동자, 굳건하게 땅을 디디고 서 있는 발까지, 사랑스럽지 않은 구석이 없습니다. 하지만 나 혼자만 그 사람에게 빠져있다면, 그 사람이 나를 바라봐줄 확률이 “우주”를 떠도는 “먼지”만큼의 “가능성”밖에 없다면, 그래서 마냥 바라만 봐야 한다면, 여름의 물가에 발을 담그고도 마음은 “검정”색이 될 때까지 타들어 갈 게 분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