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 칼럼
  • 기자명 최형심 시인

[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 기혁의 ‘내일 여름, 두 번째 천변에서’ 해설

  • 입력 2023.06.28 14:54
  • 댓글 0

내일 여름, 두 번째 천변에서 / 기혁

 

누군가를 떠올리면 이름보다 먼저

빛나는 부위가 있다

 

바람을 보는 눈이라던가

사시사철 봄볕을 숨겨둔 손

초록의 쓴맛을 소리로 바꿔주는 귀

머리의 명령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발

 

불협화음의 기억 속에서

만난 적 없는 한 사람이 걸어 나올 때

그런 온전한 모습이

사랑스러울 때

 

출생의 흔적과 절명의 흔적을 희석한 강물이

당신과 나 사이에 흐른다

 

같은 감정에 두 번 발을 담그는 것은

반칙이었지만 우리는 비로소

불순물처럼 서로를 바라보고

어깨를 쓰다듬는다

 

불투명한 여름의 투명한 전언에 대하여

고백의 근거지를 둘러싼 무수한

음모론에 대하여

 

사랑을 모르면 우주를 짊어질 수 있다는 당신의 어깨와

무중력의 해이 사이에서

 

도무지 빠지지 않는 발을 남기고 나왔다

 

여름의 초록이 검정이 될 때까지

검정의 내부가 한없는 투명의 겹침이 될 때까지

젖음의 모노포니*는 내일에만 들리는 신청곡 같은 것

 

가능성이라는 말, 이따금 슬픔으로 향하는 강가에서

당신의 어깨를 만진다

수북하게 쌓인 우주의 먼지를 툭툭

털어보는 것이다

 

* 화성이나 대위법적인 요소가 없이 하나의 성부로만 이루어진 음악.

 

____________________

최형심 시인
최형심 시인

누군가를 떠올리면마음에 햇살이 내려앉는 기분이 드는 때가 있습니다. 꽃처럼 환한 얼굴, 봄볕처럼 따스한 손길, 내 떨리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연한 귀, 바람이라도 바라보는지 허공을 응시하는 아름다운 눈동자, 굳건하게 땅을 디디고 서 있는 발까지, 사랑스럽지 않은 구석이 없습니다. 하지만 나 혼자만 그 사람에게 빠져있다면, 그 사람이 나를 바라봐줄 확률이 우주를 떠도는 먼지만큼의 가능성밖에 없다면, 그래서 마냥 바라만 봐야 한다면, 여름의 물가에 발을 담그고도 마음은 검정색이 될 때까지 타들어 갈 게 분명합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놓치면 후회할 이시각 핫이슈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