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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기자명 최형심 시인

[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 전영관의 ‘폭설 카페’ 해설

  • 입력 2023.07.27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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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 카페 / 전영관

 

북방으로 떠나기 맞춤인 날이다

 

눈송이를 헤아리는 당신에게

탁자에 흥건한 커피 향을 준비하라고 눈짓한다

 

솔개처럼 날아갈 생각을 했다

 

활공이란 허공을 미끄러지는 새들의 기법

눈 내리는 날의 생각들은 위험해도 푹신하다

 

나의 북방은 안온할 것

 

발정에 겨운 수컷 순록들이

뿔 부딪는 소리에 하르르

자작나무 가지의 설화(雪花)가 쏟아지는 곳

 

우리의 북방은 분주할 것

 

어둠 속으로 살금거리는 들짐승들 사이

어미 여우가 꼬리로 가만가만

젖먹이들 칭얼거림을 덮어 재우는 곳

 

당신은 아내여서 북방의 끼니를 예감하는지

눈빛 자욱하다

 

눈구경 하느라 창가에 서 있다가

순록에게 배운 듯 우쭐거리며 자리로 돌아온다

 

토끼나 쫓다가 도끼마저 잃어버린 나무꾼처럼

자발없이 웃어본다

 

_________________________

최형심 시인
최형심 시인

무더위에 지칠 때면 눈을 감고 먼 북구의 겨울을 생각합니다. 눈 덮인 언덕과 해가 나지 않는 긴 긴 밤, 그리고 타닥타닥 타오르는 난롯가에 앉아 그 긴 밤이 새도록 들려줄 전설이 있는 곳. 창밖에는 높은 뿔을 가진 순록과 눈처럼 하얀 여우들이 서성이고, 집안에는 여우 같은 아내가 오븐을 열어 따뜻한 한 끼를 준비하느라 분주한 곳. 청어의 푸른 등이 얼어붙은 바다 밑을 헤엄쳐 꿈속으로 찾아오는 머나먼 나의 북방……. 불볕더위에 몸도 마음도 타들어 가는 요즘이 한 편의 시를 따라 상상 속의 북방으로 떠나기 맞춤인때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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