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팔월(七八月) / 문태준
여름은 흐르는 물가가 좋아 그곳서 살아라
우는 천둥을, 줄렁줄렁하는 천둥을 그득그득 지고 가는 구름
누운 수풀더미 위를 축축한 배를 밀며 가는 물뱀
몸에 물을 가득 담고 있는, 불은 계곡물
새는 안개 자욱한 보슬비 속을 날아 물버들 가지 위엘 앉는다
물안개 더미같이, 물렁물렁한 어떤 것이 지나가느니
상중(喪中)에 있는 내게도 오늘 지나가느니
여름은 목 뒤에 크고 묵직한 물주머니를 차고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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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유난히 비가 많이 왔습니다. 때문에, 보금자리를 잃어버린 사람들도 많았고 비로 인한 불행한 사고도 많았습니다. 이 작품 속 화자는 소중한 이를 잃고 난 후, 쏟아지는 비를 보면서 만물에 깃든 슬픔을 감지하게 됩니다. “천둥”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구름”, “몸에” 언제 터질지 모를 “물을 가득 담고” 흐르는 계곡, “목 뒤에” “물주머니”라도 차고 있는지 흘러넘치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는 사람까지…… 세상에 슬픈 것들이 넘쳐나기 때문에 그토록 많은 물이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