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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기자명 최형심 시인

[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 이가림의 ‘북(北)’ 해설

  • 입력 2023.09.07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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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北) / 이가림

 

   사철 석탄가루를 싣고 오는

   열하 승덕(熱河 承德)의 바람 속에 서서 엄마는

   홍건적(紅巾賊)같이 무섭기만 한 호밀들의 허리를

   쓰러넘기며 쓰러넘기며

   부끄러운 달을 마중하였다 멀리

   보일 듯 말 듯 움직이는 외길 따라

   눈물 나는 행주치마로 가고 있었다

   마른 말똥거름 따위 검불 따위

   꺼멓게 널린 모닥불의 방천 둑을 지날 때마다

   어찌나 키 큰 송전선주가 잉잉 울었던지

   귀신처럼 무서웠다 지연(紙鳶)이 목매달고 있었다

   어느 일요일이던가 애견(愛犬) 쫑이 죽고

   빨간 새끼들만 남아 기어다니는 헛간

   나도 한 마리 강아지 되어 바자니던 것을

   오줌싸개의 나라에서는 자주 폭군이 되어

   활 쏘는 이순신의 손자의 손자

   한 웃음소리에도 어둠이 무너지고

   한 돌팔매에도 참새떼들은 떨어졌다

   노을 속 참깨를 뿌린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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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심 시인
최형심 시인

호밀밭 사이로 불어오는 낯선 바람, 밤새 울어대는 키 큰 송전선 전주, 홍건적 이야기에 겁에 질린 이순신의 어린 후손과 달을 바라보며 행주치마로 눈물을 훔치시는 어머니…… 석탄을 실어나르는 열차들이 호밀밭 사이를 지나다니는 곳, 연암 박지원의 책 덕분에 익숙한 듯 낯선 지명, 만주 열하(熱河). 일제강점기, 수탈을 피해 많은 한국인들이 만주로 이주했었습니다. 젊은 시절을 만주에서 보내셨던 외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란 저에게 이 작품 속 만주의 풍경은 반가우면서도 서글픈 기분을 떨칠 수 없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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