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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기자명 최형심 시인

[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 서효인의 ‘곡성’ 해설

  • 입력 2023.10.07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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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 / 서효인 

 

    어르신들이 삭힌 홍어를 집었다. 나무젓가락 사이에 접힌 검붉은 살점이 달의 표면처럼 거칠었다. 그들은 냄새가 심한 음식을 곧잘 삼켰다. 옆 마을엔 고인돌이 있다. 관광버스에서 우르르 내린 아이들이 원시인처럼 걸었다. 버스 뒤에서 오줌을 갈겼다. 벼가 살랑거렸다. 어르신은 혀를 찼다. 요즘 것들은 힘차기도 하지. 입안의 혀가 서해 먼바다 홍어처럼 날아다닌다. 어르신은 침을 흘린다. 마을은 기도원을 품에 두고, 옆 마을의 고인돌을 바라보았다. 아이들이 오줌을 누고, 홍어가 침을 흘린다. 사람들은 오래된 모든 것의 냄새를 애써 피하는 버릇이 있다. 아이들의 오줌에서 홍어 냄새가 난다. 어르신은 침을 흘리며 관광버스의 성기를 본다. 버스가 출렁거리며 춤을 춘다. 고인돌을 향해 돌진한다. 턱에 묻은 초장처럼 계곡에 떨어진 버스가 있다. 어르신은 달을 본다. 기도원에서는 기도를 하고, 계곡에서는 침냄새가 난다. 노인은 떨리는 나무젓가락을 입에 가져다대며 고개를 기울이고, 아아…… 계곡이 입을 벌린다. 벼가 살랑거린다. 혀의 백태가 달의 얼굴처럼 거칠다. 관광버스를 들어 올렸다. 칠레에서 수입된 홍어가 철퍼덕 쌓여 있다. 벼가 살랑거린다. 홍어가 좆을 들고 오줌을 눈다. 노인이 기도한다. 모두가 고인돌 밑에서 쉴 새 없이 몸을 부딪치며 씻어내는, 인간적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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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심 시인
최형심 시인

살이 썩는다는 것은 한때 숨 쉬고 사랑하는 존재였다는 증거입니다. 노인들이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삭힌 홍어’의 ‘검붉은 살점’을 집어 드는데, ‘고인돌’을 보러 온 아이들이 ‘관광버스’에서 우르르 내립니다. 관광버스에서 내린 아이들이 ‘버스 뒤에서 오줌을’ 갈기자 홍어와 오줌의 암모니아 냄새가 뒤섞입니다. ‘아이들의 오줌에서 홍어 냄새’를 맡은 노인들이 입맛을 다십니다. 고인돌 아래 흔적도 없는 육신과 죽은 홍어, 생이 얼마 남지 않은 노인들과 어린 생명들이 긴 시간의 스펙트럼 위에서 서로에게 겹쳐집니다. 이 작품은 삭힌 홍어의 냄새와 아이들의 오줌 냄새를 통해 먹고 먹히고 배설하는 행위와 삶과 죽음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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