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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기자명 최형심 시인

[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 송종규의 ‘중세의 잠깐’ 해설

  • 입력 2023.10.26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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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잠깐 / 송종규

  

 오렌지 빛 시간에 막 당도했네

 사소한 것들이 모여 그리운 풍경을 만드는

 이 시간은 중세의 유물 같은 거

 횡대를 이룬 가로수가 공중에 머리를 박고 있고

 공원은 온통 먼 데서 온 당신의 전언들,

 오렌지 빛 이 시간은 한 사람의 생애에 어깨 구부정한

 오십의 어느 하루를 덧댄 것이라네

 두렵고 벅차서 뒷걸음질 쳤지만

 오렌지 빛 시간에 막 당도했네, 웅숭깊은

 초겨울의 적막 속으로 스며들어 갔을 뿐인데

 공중 높이 아주 오래전에 본 듯한 텅 빈

 얼굴 하나가 걸려 있네

 우리가 언제 만난 적 있었는지, 키 큰 자작나무처럼

 오래도록 마주 서서 바라본 적 있었는지

 두렵고 눈이 부셔 뒷걸음질 쳤지만

 오렌지 빛 시간에 막 당도했네

 중세의 아주 잠깐,

 

__________________________

최형심 시인
최형심 시인

젊어서는 누구나 인생의 황혼을 마주하게 되는 일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가집니다. 황혼을 맞았다는 것은 인생의 가을에 도달했다는 것이고, 이는 곧 “초겨울의 적막 속으로 스며들어” 가야 할 때가 멀지 않았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두렵고 벅차서 뒷걸음질 쳤지만” 누구도 운명을 피할 수는 없는 법. 화자는 “어깨 구부정한 오십의 어느 하루”에 이르러 세상을 온통 “오렌지 빛”으로 물들이는 노을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공중 높이” 뜬 “텅 빈” “얼굴 하나”가 거기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두려워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아름답고 고요했습니다. 따뜻한 오렌지 빛으로 “중세의 유물”처럼 은은하게 빛을 내는 또 다른 자신이 거기 있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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