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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기자명 최형심 시인

[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 김은닢의 ‘소녀는 북풍을 타고 날아다녔다’ 해설

  • 입력 2023.12.14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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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는 북풍을 타고 날아다녔다 / 김은닢  

 

​  소녀가 파랗게 질렸다 거인이 소녀의 목소리를 삼켰다 풀어헤친 머리칼이 작은 얼굴을 휘감는다 훌쩍이는 말들 검은 씨앗으로 심장에 박혔다​

  밤마다 소녀는 북풍을 타고 날아다녔다 귀에 태엽을 감고 살바람과 들판을 달렸다 오르골처럼 바람은 소리를 남기고 떠났다 ​

  넝쿨 숲을 열면 어떤 악몽이 튀어나올까 ​

  거인이 소녀의 발꿈치를 깎아서 신발을 신겼다 다정한 눈빛으로 내려다보며 내가 네 엄마란다, 무덤가 개암나무가 아무도 모르게 붉은 꽃을 피웠다​

  소녀의 옆구리에 이파리가 돋는다 발바닥에 잔뿌리가 내린다 종아리와 팔뚝이 터지고 갈라지며 두터운 껍질로 뒤덮였다 가는 우듬지 열어 소녀가 개암나무를 불렀다​

  내 목소리가 잎 속에서 자라고 있어​

  손을 뻗으면 공중에서 일렁이는 귀들, 푸드득 새들이 나무에게로 쏟아진다 나무의 방에 불이 켜지면 나이테에 감긴 음악이 흘러나올 거야 나무는 소리를 찾는 여행자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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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심 시인
최형심 시인

작은 나무를 소녀에 비유한 이 작품은 세상에 대한 호기심, 미래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으로 복잡해진 사춘기의 내면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작은 나무 “옆구리에 이파리가” 돋더니 “발바닥에 잔뿌리가” 내리고 “종아리와 팔뚝이 터지고 갈라지며 두터운 껍질로” 뒤덮이기 시작합니다. 작은 나무는 “목소리가 잎 속에서 자라고” 있음을 감지합니다. 하지만 이제 막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소녀”의 주장은 묵살되기 일쑤입니다. “밤마다” “북풍을 타고” 날아다니며 꿈을 꾸지만 “거인”으로 상징되는 어른들의 세계를 마주할 때면 “파랗게” 질려버리곤 하는 작은 나무. 그에게 “넝쿨 숲”으로 상징되는 미지의 세계는 여전히 두려운 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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