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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기자명 최형심 시인

[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 김나영의 ‘나는 아무렇지가 않다, 를 위한 시퀀스’ 해설

  • 입력 2023.12.28 23:42
  • 수정 2023.12.28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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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무렇지가 않다, 를 위한 시퀀스 / 김나영

 

  나는 아무렇지가 않다 나는 아무렇지가 않다 피어싱도 아닌 문장이 내 혀끝에 달라붙어 있지만 나는 곧 아무렇지가 않다 아무렇지가 않다 혀끝에 도돌도돌 맴도는 나는 아무렇지가 않다 나는 아무렇지가 않다 주술처럼 반복되는 나는 아무렇지가 않다 나는 아무렇지가 않다 내 혀가 되어 가는 나는 아무렇지가 않다 최근 나는 산을 오르다가 길을 잃어버리는 꿈을 꿨을 뿐이다 여행 가방을 잃어버리는 꿈을 연거푸 꿨을 뿐이다 해몽을 보고 조금 우울해졌을 뿐이다 하지만 나는 재빨리 아무렇지 않게 된다 나는 아무렇지가 않다, 라는 문장이 내 우울을 잡아먹고 공포를 잡아먹고 나는 곧 아무렇지가 않아진다 나는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자고 하루하루가 아무렇지가 않아진다 꿈은 꿈이야 꿈쯤이야 이를 꽉 물면 너끈하게 잊어버릴 수 있다 나는 아무렇지가 않다 정말로 나는 아무렇지가 않다 나를 통째로 집어삼켜 버릴 것만 같은 나는 아무렇지가 않다 나는 아무렇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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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심 시인
최형심 시인

코끼리를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면 자꾸만 코끼리가 떠올라 괴롭습니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쓸수록 코끼리는 점점 커져 버리고 코끼리의 허상에 짓눌리게 됩니다. 불안도 코끼리와 비슷합니다.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쓸수록 점점 괴물로 변해 나를 통째로 집어삼켜버리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산을 오르다가 길을 잃어버리는 꿈을 꾸고 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여행 가방을 잃어버리는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비슷한 꿈을 연거푸꾸게 된 시인은 아는 사람에게 해몽을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그 해몽이 별로 좋지 않았나 봅니다. 그는 나는 아무렇지가 않다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며 꿈에 대한 생각에서 벗어나려고 애씁니다. 하지만 그 문장을 반복할수록 꿈에 대한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습니다. 결국, 시인은 불안의 감옥에 스스로를 가두고 말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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