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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기자명 최형심 시인

[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 휘민의 ‘첼로’ 해설

  • 입력 2024.01.08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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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로 / 휘민

 

방 안 깊숙이 달빛이 걸어 들어와 있었다

죽은 사람이 되살아나고 있었다

굳어 있던 몸에서 새살이 돋아나고

하품을 하며 깨어난 당신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흐느껴 우는 내가 있었다

 

누가 나의 잠 귀퉁이를 흔들어 당신에게 데려갔을까

암실 속으로 들어와 닻을 내린 한 줄기 빛을

망연히 바라보다가 나는 한밤중에

무릎을 껴안고 중력을 달래는 사람이 된다

 

짐승 같은 잠 속에 빠져

두 눈을 잃어버린 당신은 달의 뒤편에서

사나운 어둠을 길들이고 있는 사람

홀로 노를 저어 망망대해를 건너가려는 사람

 

활이 지나간 자리였을까

달빛에 베인 상처였을까

 

나는 한동안 당신을 생각하느라 어두워진 갈비뼈를 더듬는다

울림통이 된 몸에서 더 이상 어둠이 새어 나가지 않도록

가만가만 창가로 다가가 커튼 자락을 여민다

 

그러나 살갗을 파고드는 먹물처럼

그림자를 지워도 사라지지 않을 마음의 얼룩

 

온종일 달아올랐던 바닥이 식는지

비틀린 관절을 꺾으며 집이 우는 소리를 낸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

최형심 시인
최형심 시인

내면에 슬픔을 품은 사람은 온몸이 울림통입니다. 텅 빈 가슴 속으로 스며든 울음은 온몸을 돌아 나와 아름다운 음악이 됩니다. 텅 빈 몸이 거대한 공명통이 되어 동굴처럼 깊은 울림을 만들어내기 때문일 것입니다. 소중한 이를 잃고 한밤중에 깨어나 울고 있는 시인의 텅 빈 가슴은 언어를 변주할 수 있는 더없이 훌륭한 악기가 됩니다. “살갗을 파고드는 먹물로 받아 적은 시()는 얼마나 아프고 아름다울까요? 그래서 예술가의 고통은 세상 사람들에게는 축복이지만 예술가 개인에게는 비극이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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