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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기자명 최형심 시인

[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 오탁번의 ‘벙어리장갑’ 해설

  • 입력 2024.02.08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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벙어리장갑 / 오탁번

 

여름내 어깨순 집어준 목화에서

마디마디 목화꽃이 피어나면

달콤한 목화다래 몰래 따서 먹다가

어머니한테 나는 늘 혼났다

그럴 때면 누나가 눈을 흘겼다

겨울에 손 꽁꽁 얼어도 좋으니?

서리 내리는 가을이 성큼 오면

다래가 터지며 목화송이가 열리고

목화송이 따다가 씨아에 넣어 앗으면

하얀 목화솜이 소복소복 쌓인다

솜 활끈 튕기면 피어나는 솜으로

고치를 빚어 물레로 실을 잣는다

뱅그르르 도는 물렛살을 만지려다가

어머니한테 나는 늘 혼났다

그럴 때면 누나가 눈을 흘겼다

손 다쳐서 아야 해도 좋으니?

까치설날 아침에 첫눈이 내리면

우스꽝스런 눈사람 만들어 세우고

까치설빔 다 적시며 눈싸움한다

동무들은 시린 손을 호호 불지만

내 손은 눈곱만큼도 안 시리다

누나가 뜨개질한 벙어리장갑에는

어머니의 꾸중과 누나의 눈흘김이

하얀 목화송이로 여태 피어나고

실 짓는 물레도 이냥 돌아가니까

 

_________________________

최형심 시인
최형심 시인

목화송이를 떠올리면 포근하고 따뜻한 느낌이 듭니다. 때문에 목화송이는 가족의 이미지와 정말 잘 어울립니다. 요즘은 오리털이나 거위털 같은 것들을 넣은 겨울 외투들을 많이 입지만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겨울에는 솜을 넣어 누빈 옷을 입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지금은 노인이 되신 저희 아버지의 기억에 따르면 증조할머니가 솜을 누벼 만들어주셨던 그 옷이 그렇게 따뜻했다고 합니다. 아무리 비싼 외투도 그만큼 따뜻하지 않다고 쓸쓸하게 말씀하시는 걸 보면 아마도 그 따스함은 목화솜을 넣어 한땀 한땀 누비셨던 증조할머니의 마음에서 온 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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