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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기자명 최형심 시인

[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 차주일의 ‘완전한 가축’ 해설

  • 입력 2019.01.22 16:30
  • 수정 2019.01.22 16:31
  • 댓글 0

완전한 가축

- 차주일

 

식욕이 던진 돌창이 근육의 힘 밖으로 날아간다.

비명 한마디가 들판에 정적(靜的)을 완성한다.

실명한 들개가 비명으로 새끼들을 부른다.

인간이 제 시선을 향해 뛰어간다.

정말로, 죽음이 섞인 젖을 빨게 했을까.

들개를 둘러멘 인간이 움막으로 돌아간다.

새끼들이 들판을 등진 채 어미 주검을 따라간다.

정말로, 그 새끼들이 최초의 가축이 되었을까.

정말로, 우리에서 처음 양육한 것이 허기였을까.

새끼들이 어미 넓적다리살을 뜯어먹는다.

새끼들 눈에서 돌창이 지워진다.

정말로, 인간을 향해 꼬리 치는 각도로 우리를 열어두었을까.

들개들이 우리로 돌아와 잠을 자고 몸집을 키운다.

정말로, 한배에서 난 근친끼리 교접하게 했을까.

우리에서 태어난 새끼의 눈에 들판이 지워져 있다.

정말로, 젖이 마른 어미 개를 도살했을까.

새끼가 어미 다리뼈를 갉아 먹는다.

들판으로 돌아가는 들개의 지도가 사라진다.

인간이 양육한 허기가 들개의 식욕 속에 자리 잡는다.

정말로, 허기가 식욕을 조종하는 들개 울음이 생겨난 뒤

인간의 단잠이 시작되었을까.

인간은 길몽 중에 꼭 한 번 들개의 비명을 지른다.

비명이 악몽에 갇힌 사지를 뜯어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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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육은 억압의 다른 말입니다. 이 시는 들판을 가로지르며 자유롭게 살던 개가 어떻게 인간에게 길들여졌는지 이야기함으로써 배고픔 때문에 영혼을 팔 수밖에 없는, 점차 거대 자본에 길들여져 가고 있는 나약한 인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시 속의 개는 현대 자본주의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인간의 환유인 셈이지요. 시인은 개가 어미의 살을 뜯어먹는 골육상잔(骨肉相殘)의 세계가 경쟁의 이름으로 서로를 밟는 현대사회와 무엇이 다른지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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