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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기자명 최형심 시인

[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 유종인의 ‘정신병원으로부터 온 편지’ 해설

  • 입력 2019.04.01 16:38
  • 댓글 0

정신병원으로부터 온 편지

-  유종인

 

가상이 내 몸에 알을 스는 밤, 이다

먼 기억엔 따뜻한 정신 병원에 쓸쓸함으로 갇혔던

누이가 있다. 그때 그녀는 정신 분열증이었으나

나는 정신 미분열증으로 고생하던 청춘, 이었다

그래서 지금 생각, 한다 모든

病名이 있는 입원은 행복하다 갇혀서

따뜻할 수 있는 자들의 夢幻이

구름처럼 떠다니다 낮잠에 빠지는 사람들 속에

어린 꽃잎 같은 소녀가 남몰래 내 몸에 편지를 숨겼다

문득 내 몸은 붉은 우체통이 되었다, 집에

전화 연락 한번 해달라 부탁한 그 쪽지엔

탈출보다 극심한 폐쇄의 속살이 얼비쳤다

오래 가지 않을 것이다

여기는 온갖 것들의 세상, 그곳으로부터

아무런 편지 없을 때, 나는

오지랖 좁은 詩들을 쓰면 그대 병동의 밤을

가끔 떠올린다. 이곳은 아직 수용되지 않았을 뿐

증세를 다 호명할 수 없어 그냥 놔둔 露天병원 !

따뜻한 간호사가 필요하다, 아직

꽃나무들, 먼 새들과 함께 어떤 증세로든 살아 있어

무릇 야릇한 소음과 정적으로 희망적이다

누이가 앓고 있는 만큼 소녀가 꿈꾸는 세상만큼

세상의 얼굴은 더 늙어 보이고, 늙어서 고치는 것은

목숨을 다치는 일뿐, 누군가 아직도 식물의 맘으로

동물의 상처를 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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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란 주말드라마처럼 이상적인 모습도 아니고 너도나도 출생의 비밀을 가지고 있는 막장드라마처럼 극적인 관계도 아닙니다. 현실의 가족은 그 중간 어디쯤 위치합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이들에게 가족은 행복보다는 불행 쪽에 살짝 기울어진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가장 가깝지만 그래서 가장 상처 내기 쉬운 거리에 있는 사람들……. 가족 중에는 상처를 주지 않아도 존재 그 자체로 아픔이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시는 정신분열증을 가진 누이의 이야기입니다. “그때 그녀는 정신 분열증이었으나/ 나는 정신 미분열증으로 고생하던 청춘, 이었다”라는 문장에는 내면을 관통하는 절실한 고통이 담겨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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