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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기자명 최형심 시인

[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 김태정의 ‘오늘밤 기차는’ 해설

  • 입력 2019.04.30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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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밤 기차는 나비처럼 나비처럼만 청산 가자 하네 청산엘 가자 하네 북덕유 남덕유 지나 육십령은 너무 늙어 청산은 간 곳 없고 반야 천왕봉 시방 일러 꽃내음 아득하니 섬진강 물후미 돌아 남으로 남으로나 내려가자네 오늘밤 기차는

    나비처럼 나비처럼만 청산 가자 하네 청산엘 가자 하네 꽃아비야 너도 가자 쇠도 살도 산그늘에 흩어버린 채, 꽃각시야 너도 가자 감푸른 고기떼 달물결 타는 남해 큰 바다 여수는 여수(麗水)로되 잠도 꿈도 곤곤하련만

    나비야 심청이처럼 심청이처럼만 풍더덩 뛰어든 심해 혼몽 끝에 꽃은 피어 온통 동백이로구나 그 환한 어혈 속에 집이 들어 비난수하는 할마이 잠마다 꿈마다 꽃이슬로 슬맺혀 있고야 나비야 청산 가자 여수 14연대 구빨치 뫼똥도 없는 아비의 기일이면 달싹쿵달싹쿵 꽃몸살 하는 동박새 함께 놀다 가자 밥도 잠도 폭폭하면 꽃그늘 속 푸르고 바랜 이끼 위에 살폿 머물다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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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나이에 책 한 권 남기고 세상을 떠난 시인들의 작품은 읽을 때마다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김태정 시인은 중심을 거부하고 주변부의 삶을 선택했던 작가였습니다. 그는 자본주의와 물질세계에 속하는 대신 산그늘 아래 낮은 지붕들과 어깨를 마주하고 한 생을 살다 갔습니다. 시인의 시가 태고의 아름다움에 충실할 수 있었던 것도, 오래되고 낡은 것에서 음악성을 찾아낸 것도, 그 삶과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꽃그늘 속 푸르고 바랜 이끼 위에 살폿 머물다” 저편으로 날아가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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