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나무 환월 / 정선희
청각적 이미지의 숲이 있다
타닥타닥 불타오르는 소리들
발바닥이 뜨거워
꿈으로 뛰어드는 몸이 있다
사소한 입술마다 어긋난 잎이 돋아났다
오늘은 컵을 깨뜨리고
어제는 가방을 엎듯 그만두어야겠다고 마음먹은 그림자의 반경을 빠져나가는 새
나무는 잃어버린 립스틱을 사고 또 잃어버린 틈마다
타다 남은 불씨들, 잎이 일제히 날아오른다
나뭇가지가 가늘게 흐느끼기 시작한다
유성처럼 빠르게 빠져나가는 숲
눈동자에서 새가 불타고 있다
사선으로 하강하는 달이 발바닥에 닿는다
나뭇가지에 쌓인 눈에 어제와 오늘이
타나 남은 검은 얼굴이 흰 밤으로 기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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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지방에서는 하늘의 온도가 낮아서 공중에 떠 있는 구름이 수증기가 아닌 얼음 결정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합니다. 이 얼음 결정에 달빛이 비치면 마치 얼음 결정으로 이루어진 달이 여러 개 뜬 것처럼 몽환적인 장관이 연출되곤 하는데, 이게 바로 환월(幻月)입니다. 시인은 차갑고 고고하고 하얀, 그래서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환월을 사랑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꿈” 같은 경험입니다. 하지만 “타다 남은” “어긋난” 사랑은 마치 환월처럼 눈부시게 아름답기만 한 차가운 신기루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