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역학 / 정숙자
하나둘 우물이 사라졌다
마을과 마을에서
‘깊이’가 밀려난 것이다
우물물 고이던 시간 속에선
두레박이 내려간 만큼
물 긷는 이의 이마에도 등불이 자라곤 했다
꾸준히 달이 깎이고
태양과 구름과 별들이 광속을 풀어
맑고 따뜻한 그 물맛이 하늘의 뜻임을 알게도 했다
하지만, 속도전에 뛰어든 마을과 마을에서 우물은 오래가지 못했다
노고를 담보하지 않아도 좋은 상수도가 깔리자
물 따위는 쉽게⸺ 쉽게⸺ 채우고 버릴 수 있는
값싼 거래로 변질/전환되었다
엔트로피의 상자가 활짝 열린 것이다
가뭄에도 사랑을 지켰던 우물 속의 새
언제 스쳐도 깨끗하기만 했던 우물물 소리
그런 신뢰와 높이를 지닌,
옛사람, 무명 옷깃 어디서 다시 만날까
그리고는 우물가에 집 짓고 살까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깊이”라는 단어가 언젠가부터 시대에 뒤떨어진 단어가 되었습니다. 첨단 기계문명의 시대이자 고도의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는 무언가에 천착하고 시간과 공을 들여 한 “우물”을 깊게 팔 여유를 잃었습니다. “쉽게” “채우고” “쉽게” “버릴 수 있는” “값싼 거래로” 가득 찬 세상입니다. 그 결과 우리는 “맑고 따뜻한” 물, “새”와 “우물물 소리”, “별”을 잃었습니다. 모든 이에게 깊이를 강요하는 것은 폭력입니다. 마찬가지로, 깊이에 천착하고자 하는 이들을 그렇게 할 수 없도록 만드는 세상도 폭력적입니다.